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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가장 폭정을 일삼았다고 평가되는 연산군. 그러나 그가 폭군의 DNA를 갖고 태어났길레 한 세상을 그토록 무도하게 살았을까? 그보다는 맺힌 한을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몰랐기 때문 아닐까? 국왕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한이 되는 일도 스스로 삭힐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왜 몰랐을까? 정신적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일까? 국가를 다스리는 국왕이란 존재보다는, 가장 굵고 짧게 철저히 개인적 삶을 살다간 조선 제 열 번째 국왕 연산군을 만나보자.

-조선국왕들을 색깔에 비유한다면, 왕께서는 어떤 색과 닮았다고 보십니까?

“그야, 이르다 뿐인가? 붉은 핏빛이겠지. 이 대답을 원하고자 묻는 것 아니던가?

-넘겨짚지 마시고요.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묻는 말입니다.

“국왕을 모든 면에서 자아성찰과 수신이 완벽한 사람으로 봐서는 안되네. 국왕이야말로 그 큰 칼을 휘둘러 차고 있는듯하나 한없이 약한 사람이지. 권력의 끈이 떨어지면 어찌 존대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영락없는 그 꼴이지.

-음... 그러게요. 살아오신 삶을 보면 왜 그러셨을까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한번 인터뷰를 해 볼까요?

“그러게나. 나를 불러내 또 후세간에 교훈이라도 주려고 이러는가?

-네, 그럼. 어머니,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슴 아픈 일이네. 나는 이 대목에 이르면...(목이 막혀) 할 말을 잃네. 자네는 그것을 아는가? 내가 부왕이 살아계실 때 대궐 밖에 나갔다가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이 서로 어르는 것을 보고는 부왕께 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던 것. 그게 모자지정이네.

-그 정을 모를 사람 어디 있나요? 하지만 한을 풀어내는 방식을 문제 삼는 거죠.

“왠가? 너무 잔혹했다고 하는 말인가? 정치란 두 가지 방식 중 택일을 하는 게 아닌가 하네. 한을 풀거나, 끓어 내거나. 나는 푸는 방식을 택했지. 어머니 폐비 윤씨가 피 토하며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듯했네. 국왕이 뭐란 말인가. 제 어미 원혼 하나 달래줄 수 없다면 용좌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그 대목은 추호도 후회 않네.

-여전히 정치인 국왕과 자연인 이융(漋)을 구분하지 못하시는군요. 원한을 따지자면 하루에 살인을 세 번이나 해야 한다는 것 모르시나요?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미 나는 반정으로 몰락했고, 나의 시대도 끝났으며, 초막에서 햇빛 하나 우러러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으니 그 죄과를 다 치룬 셈 아닌가.

-역사에 대한 몰인식이 그런 게 아닌가 말이죠. 국왕이라 함은 군신 너머에 백성들이 엄연히 있는 법인데 백성을 도외시했던 게 아닌가 말이죠.

“일테면 그럴 수도 있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이미 국정은 부왕께서 탄탄대로로 만들어 놓았고, 나는 할 일이 없었으며, 뭘 한들 빛이 날 수 없었는데. 치국은 그 숙제가 주어진 국왕에게나 보람된 일이네. 그렇다고 내가 처음부터 잘못했다고 질책하려 드는 건 아니잖는가?

-왕께서는 즉위 초에는 어사를 파견하여 백성들의 고초를 살피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 했었습니다. 게다가 사가독서를 실시하여 성군이 될 조짐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쉽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왕권을 세우는 일에 너무 강박 관념을 가지신 것 같구요.

“유생이라는 게 무엇인가? 제사와 장례 의식이란 무엇인가? 조선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게 많았네. 명분을 말에 섞으나 기실 속셈은 자기들의 권력을 늘리기 위한 언사 아니던가. 그들이 정말 풍흉이 임금 때문이라 생각해서 왕을 압박한 것이던가? 자연현상을 빌미로 말을 보태려는 것에 불과한 수작 아닌가? 그들이 정말 말처럼 충성을 하던가? 해서 내가 사모 앞뒤에 ‘충성’이라는 구호를 붙이고 다니게 한 것이네.

-그렇게 불신하는 유신들을 통해 국가를 유지하고 정치의 뜻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모두 내치면 누가 왕의 주위에 남나요?

“왕의 방점은 옮겨 다니는 것이네. 한곳에 머물면 안되지.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문제된 것은 저들의 권력 다툼에 나의 방점이 옮겨 다닌 것에 불과하네.

-그러면 갑자사화는요?

“음...정치적 해석은 앞서와 같네만, 나는 여기서 피를 보는 법을 너무 깊숙이 알았지. 어머니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은 충격 자체였네. 임사홍이 들고 오지 않았어도 저들은 주고받으며 말을 세우기를 주저치 않았을 것이네. 그 일로 그 오랜 훈구 대신이었던 한명회와 정창손이 내 손에 죽어 나갔으니 <사육신전>을 써서 내 손에 죽은 남효온은 외려 내 손을 빌어 원수를 갚은 것이 되었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래서 불똥이 튀고 튀어 결국 중종반정으로 이어진 것이구요?

“나를 정상인이 아니었다 말하지 말게. 내가 풀피리 불며 ‘인생이 초로와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탄식한 이유를 그때 누가 알았겠나. 나는 끝날 때를 알고 있었어. 그건 나뿐만 아니라 어느 권력자건 그런 거네. 잔치는 끝날 때가 있는 법 아니던가? 흥청들을 데리고 놀아도 한 세상, 속흥들을 품어도 한 세상, 나보러 흥청망청 하였다 하네만, 나는 반정이 있던 날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네. 다 짧은 세상 아니던가?

개인적 아픔을 삭힘으로써 승화되기보다는 한풀이로 세상을 살아가 혼주가 되어 생을 마감한 연산군. 그는 희대의 광대인가, 폭군인가, 아니면 인생을 달관한 처사인가... 그와의 인터뷰 끝에 그가 한 말이 귓전을 울렸다. “잔치는 끝날 때가 있는 법 아니던가.”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창조의 CEO, 세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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