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길에서 줍는 거다. 줍지 않고 얻게 된 것이 있는가?

산을 오르며 만나는 무수한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아니, 산을 오르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사연이 등로에 펼쳐져 있다. 나름의 시름과 비나리가 담긴 그 사연에는 배낭에 생뚱맞은 물건을 넣고 오르는 기이한 일도 한자리 차지한다.

거래처에서 수금한 돈다발과 함께 야간 무궁화호에 몸을 실은 사람도 있다. 말인즉 시간에 쫓겨 그랬다지만 사실은 산에서 돈 기운을 쐬고 그 힘으로 사업을 더 키워보고 싶은 비나리에 나선 사람이다. 법인 통장을 들고 산에 오르는 사람은 출금난보다 입금난에 0이 몇 개 더 붙기를 바라고, 배낭에 시제품이 들어 있는 사람은 그 제품이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길 바란다. 또한 매출목표를 적은 현수막을 짊어지고 산에 올라 일출과 함께 기원제를 지내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달성해야 할 올해의 경영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각자의 욕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어 펼치는 이벤트이다. 산행에는 이처럼 다양한 욕망이 함께한다. 정말로 산이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지, 산꾼 경영자의 의지가 꿈을 현실로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산행에는 응집된 목적성 비나리가 있다.

처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서 걷는다. 하지만 그들은 서서히 등로에서 사업의 다른 길을 찾고, 백두대간처럼 힘차게 줄기를 뻗어 확장하며 전략 거점마다 진지를 구축한다. 부단히 걷는 과정이 곧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배순호 사장은 희망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른다. 산에 오르면 새로운 희망이 그간 가려진 길,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뚜렷한 목적지도 없으면서 뭔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단순한 희망을 향해 힘껏 뛰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희한하게도 내 앞에 뭔가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별로 내세울 게 없는 나로서는 앞만 보고 마냥 달려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죠. 뛰다보면 언제나 새로운 게 보였고 경험이 쌓이면서 돈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거다 싶어서 뛰어들면 늘 남들보다 조금은 앞에 서 있더군요.”

첫 사업에서 재투자가 가능할 만큼 종자돈을 불렸을 때,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차린 벤처회사가 눈에 띄었다. 젊은 사장과 몇 마디 나눠보니 실력은 몰라도 그가 추구하는 방향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시대에 맞는 솔루션과 컨텐츠라는 말은 생소했지만, 그는 그 젊은 사장의 말을 그저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일단 신문을 뒤적여 대충 흐름을 파악한 뒤, 그 비슷한 걸 개발한다는 회사에 찾아가 사업 전망을 캐물었다. 그런 다음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 젊은 사장이 개발비에 헉헉대며 투자처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뛴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때 배 사장은 거액의 수표를 끊어 젊은 사장 앞에 내놨다.

“빌려주는 건 아니고 생각해서 주식 좀 줘 봐요.”

그때부터 젊은 사장은 자신의 투지를 믿고 신용 하나로 선뜻 투자를 해준 배 사장을 믿고 따랐다. 그리고 뭔가 보여주기 위해 밤낮 없이 일에 매달렸다. 피를 말리는 2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 그 회사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로부터 6개월 후, 2대주주였던 배 사장은 지분 일부를 털고 원금을 회수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성공한 투자자라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사람들이 찾아들면서 그는 비교적 쉽게 재투자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는 아예 창업 자문회사를 차렸다.

“제가 하던 사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이제는 이 일이 본업이 됐습니다. 돈이라는 건 아무도 몰라요. 내가 어느 길로 가려 한다고 꼭 그 길이 맞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죠. 가다 보면 길이 새로 나거나 달라져 전략 수정을 하기도 하고 거기서 더 큰 성공을 얻기도 합니다. 이것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의지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에 달려 있죠. 돈이 100억 원이 모이면 그때부터는 게임이 달라집니다. 일단은 그 상태까지 가는 게 중요하죠. 그때까진 순전히 자기 힘으로 가야 합니다. 누구나 처음엔 작게 자영업을 하다 법인도 만들고 나중엔 대기업도 되는 겁니다. 이 길 저 길에서 잘 선택하고 힘을 안배한 결과죠.”

그는 요즘 투자한 회사의 컨텐츠나 솔루션을 갖고 다른 사장들과 함께 해외에 나간다. 단순 컨텐츠 수출에서 벗어나 믿을 만한 회사와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동남아에서 또 다른 기회가 엿보인다고 했다.

“사업은 길에서 줍는 겁니다. 될라치면 누가 줘도 줍니다. 그걸 얻기 위해서는 실력과 신용이 있어야죠. 그것 없이는 오래 못갑니다. 가더라도 잘못된 길로 가는 수가 있어요. 많은 사람이 작정하고 망가뜨리려고 하면 누구든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저 사람은 됐다’는 소릴 들어야죠.”

그는 요즘 주말산행을 중심으로 산을 오른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된 등로를 볼 때마다 ‘저 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들어가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단다. 가서 첫길을 열고 내 사업의 자리를 잡고 싶은 게 소원이다. 그 길에 먼저 가서 기다리면 어떤 기회를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히 타고난 동물적 감각으로 기회에 강하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그는 동남아가 바로 그런 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하여간 주우세요. 길에 떨어져 있는 게 다 돈입니다.”

그의 ‘다른 길로 향하는’ 다음 산행이 궁금해졌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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