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일화] 조조의 인재관리법을 통해 살펴 본 천하경영론

 

조조가 인재를 얼마나 귀중히 여겼는지는 삼국지곳곳에 나온다. 그 중 초소밀신(楚燒密信)’이라는 사자성어는 통 큰 인재관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다. 사정은 이렇다. 원성의 싸움 때에 조조의 맏아들 조묘와 조카인 조안민, 장군 전위가 죽고, 조조 자신도 오른팔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한다. 이 싸움의 상대인 장수는 뒤에 가후에게 설득당하여 조조에게로 투항한다. 이때에도 조조는 사적인 원한을 내세우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서로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켜 사돈 관계가 되게 함으로써 장수는 감격하여 조조의 북방 통일에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인재 사랑의 예는 또 있다. 원소를 위하여 조조 토벌의 격문을 쓴 사람 중에 진림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조조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3대에 걸쳐 매도하는 글을 썼다. 훗날 조조가 기주를 쳐부수고, 진림을 붙잡았을 때 그에게 물었다.

 

예전, 그 격문을 만들었을 때, 나의 일을 나쁘게 말한 것은 상관하지 않더라도, 어째서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욕을 보였느냐.”

 

그에 진림은, “시위에 메긴 화살은, 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신하들은 진림을 죽이도록 권고했지만, 조조는 그의 글재주가 아까워서 그를 용서하고 속관(사무관)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인재를 사랑하는 조조의 태도를 알 수 있는 일화들이 적잖이 나온다. 조조가 장수의 기습공격을 받아 큰아들과 조카가 죽었을 때였다. 그는 죽은 아들이나 조카보다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장렬히 죽은 호위대장 전위를 위해 더 서럽게 통곡했다.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당연히 크게 감동받았을 것이다.

 

또 조조는 곽가의 재주를 아껴 크게 총애했는데, 곽가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자, 조조는 곽가의 주검 앞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비통히 울었다.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목숨만 겨우 붙어 조조가 형주로 도망갈 때, 도망치는 가운데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던 조조는 안전지대에 도착하자마자 곽가가 있었으면 나를 이토록 참패하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하며 크게 통곡했다. 조조의 인재 사랑을 보고 들은 주위 병사들이 숙연해 졌을 것은 두 말할 나위없다.

 

조조가 유비의 의형제 관우에게 들인 정성은 조조의 눈물겨운 인재 사랑의 대미를 장식한다. 조조는 관우를 어떻게 해서든 얻으려는 희망이 사라지자 그는 작별 선물로 비단으로 지은 전포 한 벌을 전하면서 천하의 의사를 나의 복이 적어 붙잡아 두지 못하는구려하며 거듭 애석함을 드러냈다. 조조는 돌아오는 도중에도 내내 나의 정성이 모자랐다라고 탄식해 마지않아 주변의 막료들을 감동시켰다.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성의 부족함을 탓했던 것이다. 조조가 관우에게 보인 이런 정성은 훗날 보험이 돼 관우는 적벽대전에서 실패한 조조가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칠 때, 감히 군의 명령을 어기고 조조의 퇴로를 눈감아주었던 것이다.

 

조조는 인재를 찾아내고, 자기를 위하여 일하도록 하는 데 비상한 능력을 보인다. 이는 관직을 내려주는 것과 금품을 주는 등 두 가지의 보상책과 더불어, 혹은 그보다도 더 한 심적 결속감을 인재들에게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이 인재들의 발걸음을 조조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였던 것이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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