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 | Posted by 전경일소장 전경일 2018.11.02 10:42

허브 켈러허와 ‘펀, 펀, 펀! 즐거움과 웃음’의 리더십

허브 켈러허와 , , ! 즐거움과 웃음의 리더십

 

허브 켈러허(Herbert D. Kelleher)1932년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웨슬리언 대학 시절 학업과 스포츠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낸 우등생이었다. 이후 뉴욕대로 옮긴 켈러허는 법학을 공부하고 1956년에 졸업한다. 로스쿨까지 졸업한 켈러허는 대법원에서 사무관으로 재직하다가 1960년부터 샌안토니오에서 6년간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만난 고객과 당시까지 전혀 관심도 두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된다.

 

롤린 킹은 세인트 안토니스 클럽이라는 한 술집에서 자신의 부도난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켈러허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사업계획을 설명했다. 그 사업은 텍사스의 주요 도시인 댈러스, 휴스턴, 샌안토니오 세 곳을 연결하는 저가 항공 서비스에 관한 것이었다. 켈러허와 킹은 그 자리에서 냅킨 뒷면에 사업계획을 적고 항공 노선을 그렸다. 이 그림은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Southwest Airlines) 사업계획의 윤곽이 된다. 켈러허는 이 사업에 1만 달러를 투자했고 회사는 이듬해 법인화되었다.

 

당시 텍사스 항공 산업을 지배하고 있던 항공사들은 브래니프, 텍사스 인터내셔널, 콘티넨탈이었다. 이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 영업 허가를 얻기 위한 4년간의 법적 분쟁을 위해 100만 달러를 들였다. 당시 어느 신문에서는 이 고된 싸움을 이렇게 묘사했다. “영화나 연극, 콘서트를 관람하는 데 돈을 쓰지 마라. 허브 켈러허와 브래니프, 텍사스 인터내셔널의 변호사들이 서로 할퀴고 헐뜯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어찌됐든 결국 켈러허는 타고난 승부 근성으로 지난한 분쟁에서 승소했다.

 

사우스웨스트는 켈러허를 법률 최고 고문으로, 그리고 항공업계 베테랑인 라마 뮤즈를 CEO로 하여, 1971년에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우스웨스트는 초창기 치열한 경쟁 속에 힘겹게 버텨야 했다. 법적 분쟁에서 패배한 대형 항공사들이 잔인한 가격 전쟁을 펼친 것이다. 그 결과 사우스웨스트는 3년차까지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1978년에는 CEO 라마 뮤즈가 사임함에 따라 위험한 고비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사우스웨스트 항공에 커다란 행운으로 작용하게 된다. 장차 사우스웨스트의 주역이 될 허브 켈러허가 차기 회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1982CEO로 취임한 켈러허는 이단아와 같았지만, 혁신적이며 성공적인 입지를 굳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쓸데없이 호화롭기만 한 서비스 대신 꼭 필요하면서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결정적으로 그의 괴짜 같은 성격은, 그만의 경영 노하우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켈러허를 앞세운 사우스웨스트는 마침내 흑자로 전환되기에 이르렀고, 이후부터 사우스웨스트만의 독특한 문화와 경영방식을 통해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현재 허브 켈러허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이지만, 유머와 끈끈한 인간관계를 앞세운 그의 리더십은 여전히 많은 리더와 조직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사우스웨스트는 그의 유산을 이어받아 업계 최고수준의 직원 만족도와 고객 만족도를 자랑하는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켈러허가 보여준 조직 운영의 묘미는 유쾌한 리더십인 것이다. 유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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