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인문역사/남왜공정 | Posted by 전경일소장 전경일 2017.08.09 14:04

왜구, 전쟁으로 전쟁을 말하다

왜구, 전쟁으로 전쟁을 말하다

 

고려와 조선을 연이어 붕괴시킬 버릴 정도로 극악스러웠던 왜구. 이 광포한 약탈살인 집단은 우리에게는 일본이란 나라의 이미지와 그대로 클로우즈 업 된다. 900여회나 되는 국지전과 전면전을 치룬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왜구와 일본을 동일시하는 인식을 가져왔다.

 

오늘날 한일 관계의 깊은 감정의 골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이 점은 한반도를 대상으로 일본이 지속적으로 야기한 침구가 원인이었고, 그로 인해 생긴 불편한 관계라는 점에서 일본 책임론으로 귀결된다.

 

더불어 우리의 인식도 담금질될 필요가 있다. ()를 심리적 혐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자칫하다간 임진왜란 이후 사대부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진 명분론처럼 감정에 치우칠 위험성마저 있다. 임란 이후 조선 사대부들은 실제 외침을 당했지만 심리적으로는 우리가 이긴 전쟁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일본을 얕잡아 보는 오만한 아전인수식 사고는 300여년간 이어져 근대 들어 무방비 상태로 왜의 침략을 다시 맞게 되는 배경이 된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인식은 서릿발같이 냉정하고 날카롭지 못하다. 일전 축구 경기를 관전하듯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당위론적 공감대만이 팽배하다. 모든 면에서 패배했어도 사실상 이긴 거라는 자족적 해석을 내놓기 일쑤다. 이래가지고는 일본의 침구 야욕에 맞설 수 없다. 감정보다는 왜구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인식력을 통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때에라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뼈아픈 지적이지만, 한반도를 900여회나 침구한 데에는 왜구 나름의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침구한 그들의 경쟁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점은 오늘날 일본의 침략 경쟁력과 전력(戰力)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본다. 나아가 독도문제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의 대처 방안을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뼈아픈 고통을 안겨 준 이 역사적 통점(痛點)’을 아는 것이야말로 ()왜구전의 출발점이다. 적을 이기려면 적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냉엄한 분석에 따른 계책만이 이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지켜낼 수 있다.

 

오랜 역사상 한반도를 숫하게 침범한 일본의 왜구 근성전략을 알지 못한다면, 21세기 영토와 역사 전쟁은 물론 정치·경제·문화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일본 내 ()왜구주의가 극성인 이즈음, 뼈를 깎는 지피지기의 자세야말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된다. 오랜 시간 침략와 침구 면에서 지속성을 보여 준 왜구식 전략전술을 살펴보자.

 

병상신속(兵尙神速) 치고 빠지는 약탈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랜 침구 역사상 왜구는 어떤 전략을 취해 왔을까? 서기 3935, 왜구는 신라 금성을 공격해 5일 동안 포위하고 있다가 퇴각했다. 4444월에는 침구해 온 왜구가 10일 동안 포위했다가 물러났다. 이 시기 왜구의 포위공격이 10일을 넘지 않았던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왜구가 ‘10일 내 포위 공격 및 약탈이라는 공식을 취한 것은 군사 행동의 목적이 점령이 아니라, 기습·약탈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라에 침입한 왜구는 대규모 병력인 경우도 있었으나, 주로 소규모 병력에 불과했고, 해안 변경 지역에 집중되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왜병의 군사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구가 취한 소규모 병력동원단기간 침구공식은 가장 기본이 되는 도발 공식이었다.

 

예를 들어 총 77회나 침구한 고려 말 침구 시, 왜구는 고려 영토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대부분 1~2일 또는 2~4일 정도의 단기간이었다. 이보다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들은 노략질이 끝나면 바로 달아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불시에 침략해 단기간에 약탈, 살인, 방화, 납치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 후에 철수하는 전략을 취했다.

 

침구 지역도 대부분 뱃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연안 일대로 빨리 약탈하고 도망치기에 쉬운 곳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동해안의 마을이나 성곽은 늘 식량과 사람 면에서 침구 대상지가 된다.왜구식 치구 빠지는 침구법은 경상도 도순문사(都巡問使) 김속명(金續命)이 올린 상서에도 잘 드러난다. 김속명은 왜구 3천을 진해에서 격파한 인물로 왜구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왜구는 여름 파리와 같아서 우리 토벌대가 나타나면 원양(遠洋)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기회를 엿보아 침입하는 것이므로 도저히 근절시킬 수가 없다.

 

왜구의 전략이 야음을 틈타 치고 빠지는 히트 앤 런(hit & run)’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약탈을 주목적으로 하다 보니 왜구는 방비가 약한 틈을 타서 불시에 침입해 약탈을 감행하고는 달아났다가 다시 때를 봐서 기어들었다. 일종의 게릴라전 성격이었다.

 

문제는 그런 날렵하고 교활한 적을 상대로 대부대를 배치할 수 없다는데 있었다. 이런 고충에는 당시 우리의 방위 체계도 큰 몫을 차지한다. 고려는 왜구의 출몰이 극심한 남방 해안지역에 대략 20~30리 내지 50~60리 간격으로 허술하게 방수처(防守處, 경비초소)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더구나 훈련이 부족한 병력을 배치해 해안을 방비케 하는 실정이었다. 이는 북쪽으로부터 홍건적 침입이라는 초대형 침구에 맞서 모든 군사적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헐거운 방어체계로는 원하는 어느 지점이든 침투하는 왜구를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와 함께 고려 수군의 무능력도 크게 한 몫 한다. 일례로, 1364322일 고려의 80척 함대는 내포에 사는 백성들이 적이 매복하고 있는 적정(敵情)을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마사 변광수와 리선의 잘못된 지휘로 적의 계교에 빠져 패배를 자초했다. 이는 고려군의 작전 수행 능력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약점을 파악하고 왜구는 더욱 치밀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고려의 연해 주군을 노략질해 가며 피해를 가중시켰다. 선단의 규모가 클 경우에는 고려의 연해지역을 배회하다가 육지에 기습 상륙하여 고려의 방수군(防守軍)과 정면으로 맞서서 이를 격파하고 신속히 식량을 약탈한 뒤 도주했고, 규모가 작을 때에는 고려군이 배치되지 않은 지역만 골라서 은밀히 상륙해 신속히 약탈한 뒤 도주해 버리는 전법을 구사했다.

 

이렇듯 왜구는 불시에 불특정 지역에 침구해 약탈하고 사람을 납치한 다음 도망치는 수법을 썼다. 왜구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신라는 격퇴 작전으로 일관했지만 먼저 공격을 받은 다음에야 대응하는 선수후공(先守後功)’의 작전으로는 왜구를 근본적으로 퇴치할 수는 없었다. 왜구보다 한 발 늦음으로써 대응면에서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왜구와의 조우를 해상에서 전개하고자 하는 전선(戰線)전진배치 전략이 논의되어 전함을 구축하는 등 전술적 보완책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세적인 방법에는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왜구 방비가 쉽지 않았던 것은 이들이 개별 지역을 불시에 습격하는 출몰 방식을 보이며 치고 빠지는 왜구식 침구전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왜구는 남해, 서해는 물론 넓은 바다에 모여 있기도 했고, 흩어지기도 하는 등 늘 유동적 상태에 있었다. 바다의 유동성을 잘 활용한 셈이다. 또한 낮에는 떼를 지어 바다에 나가 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들었다. 규모 면에서 크기도 하고 작기도 했으며, 불리한 상황에서는 움츠러들고, 유리한 상황에서는 전면적인 공세를 취하는 등 유연한 전술 운용을 했다. 왜구를 뿌리째 뽑거나, ()왜구전에서 큰 전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왜구식 침구법의 특징은 오늘날 일본이 보여주는 행태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일본은 툭하면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도발을 감행하고 나서 빠르게 논란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매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주도해 왔다. 우리가 대책을 마련할 때쯤이면 때로는 화해의 제스추어를 취하며 무야(無也)시키고자 했다. 이런 현상은 위로부터 천황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본 정부의 각료들에게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기회주의성은 여기에 기인한다.

 

이 같은 왜구 침구 방식과 오늘날 일본 지도층의 공통적인 특징은 향후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예시가 될 수 있다. 정치경제문화 분야는 물론 일본과 접하는 모든 접점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이 이와 같다. 왜구의 전략은 치고 빠지는식이며, 그들의 변화무쌍한 전술은 침구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왜구 전략을 알 때 대비책이 보이는 것은 이와 관련 깊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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