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는 창조적 혁신

 

"아니, 칫솔을 만들었으면 치약도 만들어야제."

 

고객의 제안 중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가려서 쓰면 된다. 플라스틱으로 칫솔을 만들고 나자, 칫솔이 있으면 치약이 있어야 하고, 비눗갑을 만들었으면 거기에 들어가는 비누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포목점 시절, 진주의 막강한 경쟁자 천종상점으로부터 배운 바를 보다 정교하고 과감하게 변환해 진주 상권을 휘어잡았던 구인회였다. 구인회는 주변의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듣지 않았다. 고객이 던지는 제안을 성장 기회로 삼기 위해 경청하고 숙고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 바를 남의 입을 통해 듣는다는 건 보다 강한 확신을 심어 준다.

 

어떤 연관 분야도 피상적으로 보면 그저 단일품목으로 한정돼 보인다. 하지만 실은 그 안에 거대한 산업의 싹이 들어있다. 줄기만 당겨도 줄줄이 따라 달려오는 고구마와도 같다. 사업가라면 연관된 가치를 보아야 한다. 칫솔-치약, 비눗갑-비누는 전혀 다른 산업이다. 하지만 고객의 일상생활에서 보면 인접영역이다.

 

플라스틱 제품이 성공하자 럭키는 칫솔을 주요 상품 목록의 하나로 추가한다. 이제 남은 것은 치약 개발이었다. 문제는 칫솔과 치약이다. 두 개의 상품은 제품 자체가 다른 면도 있지만 산업이 전혀 달랐다. 동떨어져 있던 다른 산업이 생활 혁명이란 주제 아래 묶였다. 산업을 묶어 내는 것은 확장성 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연관 분야로의 지속적인 성장은 이럴 때 가능하다. 구인회에게 이 둘을 묶는 것은 산업의 틀을 새롭게 짜는 야심찬 기회로 다가왔다.

 

우선 기계는 미국의 아베 엔지니어링(Abbe Engineering)에 배합기 1대, 독일 스웨브 홀(Schweb Hall)에서 충전기(充塡機)와 튜브제조기 1대를 발주했다. 그리고 캘린더기(Calender, 비닐 제품 표면을 매끈하게 광택 내는 기계) 등을 도입해 차츰 공장 모양을 갖춰 나갔다. 그런데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치약 제조법이었다. 치약은 연마제가 적당히 들어가야 하고, 크림상태를 유지하는 습도제의 배합비율이 중요하다. 또 입 안에서 거품을 만들어 내는 기포제를 첨가해야 한다. 하지만 입안을 상쾌하게 하는 감미제와 향료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어느 것 하나 아는 게 없었다. 치약 개발 초기의 기술적 난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생각 끝에 구인회는 연구진에게 밤낮으로 콜게이트 치약 성분을 분석하고 실험하게 해 본다. 하지만 끝내 정확한 배합률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구인회는 국제청년회의소 총회 참가 차 멕시코에 갈 기회를 얻은 구평회에게 제조 기술을 알아 올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무슨 수로 원천 기술을 얻어 온단 말인가?

 

당시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에 의해 콜게이트 치약이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외국인에게 '피터 구'로 알려진 구평회는 형의 지시에 따라 뉴욕의 월스트리트 37번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미국인 8명과 합작해 치약원료 수입대리점을 차렸다. 말이 좋아 원료수입 대리점이지 사실상 정보 수집을 위한 거점이었다.

 

그는 8개월 동안 콜게이트사의 연구소와 원료공급사, 향료 납품회사 직원들을 폭넓게 접촉했다. 단 한마디의 정보라도 얻기 위해 그들을 뉴욕의 유명 음식점으로 초대하여 치약 제조 기술을 하나씩 수집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수집된 자료는 그때마다 서울로 보내졌다. 국내에서는 한 살 위인 구자경이 구평회가 보낸 자료에 따라 치약 시제품을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수집된 정보는 엉성해서 서울로부터 "하라는 대로 해봐도 안 된다"는 불만의 편지만 잇달았다.

 

결국 구평회는 콜게이트 회사를 찾아가 연구소 관계자들을 만나 자료를 구하고자 한다. 결과는 문전박대였다. 일거에 거절당하고 몇 날 며칠 콜게이트 회사 외곽의 연구소와 납품업자들을 찾아다닌다. 그는 노력 끝에 몇 개의 단편적인 지식을 얻어들게 된다. 그런 중에 마침내 듀폰, 다우케미컬, 허큘리스 등 대형 화학회사들과 끈질기게 접촉해 정확한 배합기술을 알아내는데 성공한다. 글리세린 함량비율부터 기포제의 비밀, 점도비밀, 인산칼슘 배합비율까지······.

 

자료를 받아든 락희화학 사람들은 배합률을 수없이 바꾸고 조정하며 근 일 년 가까이 실험했다. 그 보답으로 마침내 콜게이트 치약과 거의 똑같은 치약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힘을 얻은 구평회는 사방으로 뛰어 플라스틱 제조기술도 알아낸다.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나 인쇄 잉크는 물론 유행제품에 관한 자료까지 닥치는 대로 조사해 본사에 보냈다. 일종에 산업스파이 비슷한 역할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벤치마킹이었으나, 다음은 창조적 발상이 필요했다. 개발팀의 고민은 어떤 비율로 배합할 때 제대로 된 치약이 만들어지며, 어떤 것이 우리 기호에 맞을지 하는 점이었다. 여기엔 공급자적 사고가 아닌 철저하게 고객 중심의 사고가 작용했다.

 

결국 개발팀은 한국사람 입맛에 맞게 많은 향료 회사들을 접촉해 톡 쏘는 맛과 은은한 맛의 중간 맛을 내는 치약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양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후한 평가를 한다고 해도 외국 일류제품에 여러 면에서 밀렸다. 회사로서는 조기 출시해 수익을 내고 싶었으나, 결점이 발견되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출시 시기는 계속 늘어졌다. 답답한 건 구인회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투자비를 빨리 회수하기 위해 대충 출시하자는 의견까지 내놨다.

 

지금 그대로 내놓았을 땐 어떻게 될 것인가? 구인회는 본능적으로 고객이 외면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그때 구인회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품질이 보장되고 나서야 마케팅이 뒤따르는 법이다. 품질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지킨 탓에 럭키치약은 군납(軍納)의 길이 트이며 국산 치약의 선두에 서게 된다. 럭키 치약을 사용한 군인들은 마치 2차 대전 시기 전쟁터에서 코카콜라를 맛본 군인들이 집에 돌아가 다시 같은 음료를 찾았듯 럭키 치약에 자연히 손이 갔다. 기본에서 답을 구한 것이다.

 

이런 자세는 럭키그룹의 전통이 된다. 당장 수지를 맞추기 위해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내다 팔수도 있었지만, 신뢰를 잃는 일은 철저히 배제했다. 기술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제품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럭키가 보여준 혁신은 여느 기업들과 달리 생활혁명을 불러왔다. 더불어 전후 국민 생활에 크게 이바지했다. 소금과 콜게이트와 같이 재래용품과 외산 제품이 중심이 되는 치약 시장을 우리 제품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꿔놓았고, 플라스틱은 놋그릇, 놋수저 등 주방용품을 값싸며 편리한 용품으로 대체시켜 버렸다. 이처럼 럭키 발전사는 '생활을 바꾸면 산업이 일어난다.'는 원칙에 기초한다. 그리고 원칙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럭키의 이 창업자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품질에 대한 오랜 고집은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5.16 이후 진출한 전선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작은 했지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제품이 생산된 것은 아니다.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사장으로 있던 윤욱현은 불철주야 뛰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제품을 찾아 일일이 품질검사를 했고 불합격품은 폐기해 버리기까지 했다. 경쟁사를 의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품질에서 밀리고 싶지 않다는 오기기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 전선업계는 동선만 생산했는데, 럭키(금성)는 알루미늄 선을 연간 1천 톤 까지 생산하게 된다. 알루미늄 선은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훨씬 높았다.

 

1950년대를 결산해 보면 럭키는 꾸준히 산업독점을 강화하고 있다. 60~70 퍼센트의 거의 완전 독점에 가까운 시장지배자 위치를 점한다. 30년 지난 1983년 정부가 독점품목을 발표했을 때 럭키금성은 21개 품목이 독점적 품목에 해당되어 한국 기업 중 최다를 기록했다. 오랫동안 럭키금성이 독점력을 지닐 만한 기술우위를 다져왔다는 얘기다. 신제품에서의 독점적 지위는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럭키를 도약시킨 강력한 배경이 된다.

 

"외부인들은 성장보다 안정을 강조하는 우리의 재무 정책 때문에 우리 그룹을 초보수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개발 투자를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평균적으로 매출액의 6 퍼센트 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사업특성의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연구개발 분야에 계속 많은 돈을 투자할 것입니다."

 

구인회에 이어 구자경 회장이 밝힌 LG의 성장 비결은 기술혁신이다. 품질주의 원칙은 럭키인의 자부심을 높이는 엄청난 효과로 작용했고, 무엇보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축적 계기가 된다. 그 성과는 화장품과 치약을 만드는 데에서 출발해 오늘날 세계 최첨단 기기로 이어진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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