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쓰는 글 | Posted by 전경일소장 전경일 2012.09.20 13:17

[그리메 그린다] 전경일의 신간

[전경일의 신간: 그리메 그린다]

제가 이번에 신간을 냈습니다. <그리메 그린다(그림같은 삶 그림자 같은 그림)>.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15명의 조선 화가들의 치열한 삶과 인생, 예술 이야기를 담은 것은데요, 2007년부터 기획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신간으로 내놨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읽으며 더욱 깊어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기 책의 서문을 옮겨 볼까 합니다.

 

■ 들어가는 말


그림자 같은 그림이 삶 아니더냐?


내가 그린 그림이 나를 그리고, 그 그림이 내 그림자를 그린다. 그림으로 세상 속에 들어오고, 그림으로 세상 밖에 나간다. 그림은 살아서 나를 가두고, 죽은 뒤에는 나를 세상에 꺼내어 놓는다. 그러니 그림을 그리는 건 삶의 그림자를 그려내는 것일지니, 내 어찌 온전히 그림을 그렸다 하겠는가? 내가 그림을 그렸고, 그림이 나를 그렸다 하겠는가. 그림 그리는 환쟁이여! 너는 삶의 족적을 분분히 남겼건만, 종국엔 그림자만 그려내고 갈 뿐이구나!


그림을 생업으로 삼은 조선 화가들의 옛 그림을 보며, 그들 삶의 흔적을 더듬어 낸다. 그림이란 무엇이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을 그려대는 자들은 누구인가? 봄철 분분히 날리는 낙화를 보며 불현듯 떨어진 꽃잎들이 종이 위를 내달릴 때 붓으로 인생을 산 사람들을 가만히 불러내 본다. 그들 삶은 그림만큼이나 명징하다. 삶의 족적이 점점이 찍힌 동양화로 남아 있다. 때로 표표히 나뒹구는 가을 낙엽처럼 쓸쓸하거나, 교교한 달빛에 젖은 오동잎처럼 청수하거나, 겨울 눈꽃을 뚫고 피어나는 매화향같이 고고하다. 나귀를 타고 설산을 헤매는 나그네의 시린 뒷모습 같거나, 세상을 호령하듯 노도한 붓질로 일갈하는 선사(禪師)와 같다. 신화를 더듬으며 어렵사리 인생길을 걸어가는 구도자의 순례길과도 같다. 이 모든 걸음은 그림 속 풍경일 뿐이지만, 그림은 그림을 그린 환쟁이의 삶을 어김없이 비추어낸다. 나의 삶이 이러하였다고 가만히 소리치는 것만 같다. 그림 속에서 떡머구리처럼 아우성치는 것만 같다.


오늘 옛 그림 몇 점을 들여다보며 그림처럼 살다간 그들 삶의 그림자를 따라간다. 여기서 다루는 화가들의 삶은 다양한 체취를 풍긴다. 대를 이어 그림을 그리는 피가 흐르고, 호방함과 기예가 넘쳐난다. 그림 그리는 일로 울분과 격정을 치유하며 울울한 삶을 산 사람들도 있다. 세상으로부터 유배되어 영혼의 고독이 다투는 그림을 그린 자들도 있다. 애써 힘을 다하였으나, 스승의 그림자에 갇혀 끝내 벽을 넘지 못한 불운한 제자들도 있다. 스승을 다른 방식으로 넘어서며 자신만의 세계를 펼친 이도 겨에 쌀일 듯 보인다. 모두가 자기 식대로 살았고, 자기 식대로 그림을 그린, 그리하여 그림으로 환생한 환쟁이들의 초상이다.

 

환쟁이는 중인의 삶 속에서 사회적 계급을 의식하고, 그림을 천업으로 여기고 산 사람들이다. 때로는 사대부로서 필운을 힘껏 드러내 이름 석 자를 남긴 문인화가도 있다. 글을 만졌어야 했으나, 역적으로 몰린 집안 배경으로 행로가 꺾이며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다. 타고난 천품으로 붓을 한껏 희롱하면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는 대작을 신들린 듯 쏟아낸 천재들도 있다. 시린 세상을 벗어나고자 술로 인생을 먹칠하듯 살다가 끝내 길거리에서 횡사한 미치광이 환쟁이들도 있다. 초년, 장년, 말년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요동친 인생도 있고, 초년 운이 장년 운에 미치지 못하거나, 말년 들어 운이 다하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만 한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윤택해지기도 한다. 예술혼이 꺾이지 않으면 때는 종이를 받아 만개한다. 이런 꽃은 사시사철 보는 풍년 꽃이라, 인생의 복록을 누리게 하는 그림이리라.


그들은 삶과 그림으로 세상을 마음껏 비웃기도 했고, 정좌를 틀고 적요 속에 잠기기도 했으며, 술을 뿜어대고 세상에서 취한 모든 것을 토해내기도 했다. 어떤 그림은 우수에 젖어 있으며, 어떤 그림은 용솟음치게 한다. 어떤 그림에는 사랑이 흐르고, 어떤 그림에는 술이 뚝뚝 떨어져 문뱃내가 배어나고, 어떤 그림에는 그림자만이 고요히 춤춘다. 무엇이 그림이고, 무엇이 그림자인가? 삶은 그림자인가? 그림자란 무엇인가? 그들이 그린 그림은 그림자인가, 그림이었을까? 혹은 그들 자신이 그림자였던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삶의 결은 각기 다르나, 이들은 시대를 초월했고 혈혈단신으로 당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겨울철 얼음물을 뒤집어쓰듯 세상을 깨고야 마는 예술가의 옹골찬 정신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죽비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조선 화가들의 삶을 보노라면 무릎을 끌어서라도 다가가야 할 데가 있다. 삶이란, 그림자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라는 화두가 그것일 게다. 누구의 삶도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영속할 것 같지만, 살아 한때 시대의 박편을 움켜쥐고 세상의 드넓은 바다를 마냥 떠돌다 결국엔 죽어 없어질 처량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 그린 모든 그림이 다 삶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여 그림은 인생을 알게 한다. 생의 지난 길과 밀려오는 길에 반추가 된다.


그림은 비단 비평가와 평론가들의 영역만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심성으로, 삶의 철학과 관점으로, 세상을 읽는 힘과 경륜으로, 그림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몇 장의 종이로 이름을 내거나 무엇을 주장하기보다, 불현듯 거기서 무언가를 느끼기만 하면 깨달음을 얻는 순간과도 같다. 아무것도 못 보고 느낀 바가 없다면, 이는 감동이 없거나 나와는 교감 되지 않는 별무 인연의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 인생이 바뀌며 그림을 보는 눈이 생겨나면 예전에는 몰랐던 것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아, 하고 탄성이 터질 때가 있다. 이제 볼 때가 되었구나, 내게도 보맞이한다면, 삶의 궤적은 이미 적지 않은 차륜을 그어 왔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 본 경험이 반영되었거나, 삶에 대한 통찰의 안목이 생겨난 것일 터다. 내가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들을 다루고자 하는 것은 예에 있다. 그림이 보이기 시작할 때가 세상을 알기 시작한 때이다.


그간 나는 청맹과니였거나 삶의 깊은맛을 우려내는 우물을 한참이나 지나쳐 달려온 것일 게다. 예전에는 안 보이는 것들을 보는 게 그림을 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보이는 번연한 것을 보는 것, 보이던 것을 틀어 보는 것이 그림을 보는 경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운필을 떠올리며, 그 붓이 움직이는 바로 앞자리에 가서 눈앞에 펼쳐진 작화 광경을 지켜보듯 여러 그림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그림 속 화가들과 어느 정도는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조선의 그림과 화가들에 대해 글로써 어루만져 보려고 지난 10년간을 곤두세워 왔다. 그러나 느낌이 찾아오지 않을 때에는 그들과 교감할 수 없었고, 나와 동떨어진 채 그들은 그림 속에나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많은 공부는 그림 속 화가들과 대화의 길을 터주는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어느 순간, 그들의 생애와 그들이 그려낸 그리메 같은 그림을 순식간에 포착해 냈고, 그림 같은 그리메를 보았다. 이제 이것을 세상에 풀어놓을 때가 되었다. 이 책은 이런 내 심중의 격렬한 변화 속에서 주워 모은 화가들의 이야기를 내 식대로 묶어 낸 것이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는 나의 감정, 느낌, 생각이 끼적거리게 한 단상들이 전문가의 정치하고, 정교한 비평보다 못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림은 보기 나름이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그런즉, 그림은 스스로 보는 것이며 읽는 것이다. 독화(讀畵)의 경지다.


나의 조선 화가 기행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뒤따랐다. 나의 관심을 구체적으로 도와준 많은 선생들의 글은 빠짐없이 말미에 그 성명을 다하고자 하였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나는 그분들께 빚을 졌으나, 그 빚은 독자들이 우리 그림과 조선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낱장 낱장 긴 여운으로 펼쳐보는 것으로 족히 갚음이 되리라 믿는다. 아, 조선에 이런 그림과 환쟁이들이 있었구나! 그들 삶과 예술혼을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히 저려온다.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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