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하치가 등장하는 무렵은 원ㆍ명과 명ㆍ청의 남북 교체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북으로는 몽골과 여진이 병존하면서 몽골의 쇠퇴와 여진의 흥기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대륙의 패권을 겨눌 힘의 중심이 여진으로 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주인을 자처했던 몽골에는 당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그 무렵 몽골은 중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채 약탈과 조공, 와시무역(瓦市貿易: 시장ㆍ장터에서의 거래를 통한 교역) 등으로 경제를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더구나 변화하는 대명 관계 속에서 몽골은 정치적으로도 체제 통합을 이뤄 내지 못하고 분열상을 보였다.

반면에 여진은 명과 조공ㆍ위소(衛所) 관계를 형성한 이래 와시 무역의 확대, 요동 한인 지배들을 통해 대외경제를 확대시키며 정치 조직의 통합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훗날 ‘대청체제(大淸體制)’를 형성하면서 중국 정복을 시도하게 된 배경이 된다.

원대(元代) 몽골의 지배 하에 있던 여진이 명초 대명 관계의 형성과 함께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명대 대부분의 시기에 몽골과 여진은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명 말기에 이르러 몽골과 여진의 분리, 병존 관계에는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619년 후금(後金)의 요동 공격과 함께 여진과 몽골 사이에는 대립과 연맹 등 직접적인 관계가 형성되었고, 1636년에 이르러서는 여진이 최종적으로 몽골을 병합하기에 이른다. 북아시아에서 몽골과 여진의 동, 서간 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여진과 몽골의 역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던 1619~36년 사이에는 몽골의 쇠퇴와 여진의 흥기가 교차했다. 이 시기에 여진은 몽골의 대외경제를 병합하고 이를 이용해 정치 체제를 강화하였다. 반면에 몽골은 독자적인 대외 관계를 상실하고 정치적으로는 여진 한(han)의 지배에 예속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여진과 몽골의 역사 전개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평가 된다.

한편, 명은 요동 지역을 몽골과 여진을 분리 통제하기 위해 박아 놓은 쐐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인식했다. 말하자면 버퍼 역할을 수행하는 ‘경계 지대’라고나 할까. 그런 이유로 요동 지역은 몽골과 여진이 동서쪽에서 공동으로 대명 경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여진족은 요동으로 진출하여 이 쐐기를 뽑아버렸고 이로 인해 명, 몽골, 만주의 관계는 재편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의 요동지역은 위소제(偉所制), 군둔(軍屯) 등의 제도가 실시되는 일종의 군정(軍政)지역이었다. 요동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패자(覇者)가 누가 될지 자명했다. 이 같은 때에 내부적 결속을 강화한 누르하치는 먼저 요동으로 진출하여 명이 박아 놓은 쐐기를 뽑아버린다. 그럼으로써 요동을 둘러싼 명, 몽골, 여진의 삼각관계는 급속히 재편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여진족에게 중국은 무엇이었는가? 야만적인 영토를 누비는 야생마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그들에게 중국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들은 왜 중국을 인수 합병해야만 했을까?
ⓒ전경일, <글로벌 CEO 누르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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