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은 거듭되는 훈련에 따라 기량을 익혀 나간다

뭍의 사람들의 가장 큰 골치덩어리는 고정관념이다. 그들은 움직임을 두려움으로만 바라본다. 바다는 움직이지만, 고정 불변의 진리가 그 속에 내포되어 있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움직임은 변화다. 바다는 더 빠르고 크게 움직임으로써 세상을 지배해 왔다."

바다를 알면 불확실성의 경영 세계를 더 잘 꿰뚫어 볼 수 있다. 기업 경영이란 결국 움직임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 아닌가. 소니의 이데야 회장이 말한 '동적 안정 상태'라는 말은 이런 것일 게다.

해녀는 어엿한 직업인이다. 해산물 채취 전문가 집단이다. 한 사람의 해녀가 당당히 제 몫을 해내기 위해서는 대략 10여 년의 고된 훈련이 필요하다. 세상에 거져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프로의 조건이 될 수도 없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대상군이 되려면 약 25년 정도 바다를 읽고, 파도를 타야 한다. 이때쯤이면 작업하는 바다의 깊이도 달라진다. 역량으로 치면 대략 20 미터 정도까지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보통 6~10 미터 정도 깊이에서 물질한다. 직장인이라면 대략 10년 정도의 경력을 지니면 과ㆍ차장급, 25년 정도면 능력에 따라 임원급에 오른다. 해녀의 등급도 기업 조직처럼 오랜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개인 역량에 따라 차이는 난다.

물질을 익혀 나간 소녀 해녀는 점차 하군(下軍) 해녀로 성장하며 독립해 나간다. 하군 해녀로 독립하게 되면 무슨 일부터 할까. 우선 ‘테왁’부터 바꾼다. 그동안 놀이기구 식으로 사용한 ‘족은테왁’을 버리고 정식 규격의 것을 갖춘다. 해녀로 독립하기 위해 생산도구부터 바꾸는 셈이다. 마치 프로 골퍼들이 클럽을 피팅(fitting)하는 것과 같다. 어린 해녀들은 해녀용 정식 ‘테왁’을 가지면서부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자신을 발견한다.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긴장감과 설레임이 바다에는 인다.

해녀로 독립하기 전이라도 물질에 남다른 소녀들은 초등학교 5, 6학년이면 물질을 통해 벌써 제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마련한다. 크면서는 제 혼수를 스스로 마련한다. 경제적 의존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독립심과 자립정신은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몸에 붙는다. 이런 1인 기업가다운 면모가 제주 해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든 요인이다.

해녀는 기량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 대체로 세 단계로 구분된다. 상군(上軍)․중군(中軍)․하군(下軍)이 그것이다. 이런 구분은 채취 역량에 따른 구분이다. 나이가 많고 적은 건 해녀 사회에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만큼 능력주의 원칙이다. 물질 역량은 세습되거나, 갑자기 익혀지는 게 아니다. 오로지 피나는 훈련이 뒤따라야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잠수 기량을 가지고 태어난 해녀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에 살면서 꾸준히 익혀온 반복 훈련의 결과이다. 강철이 불에 의해 단련되듯, 해녀들은 물에 의해 단련된다. 그런 의미에서 물질은 철저하게 자기 노력, 요즘말로 자기 경영의 결과이다.

어느 마을이나 어린 소녀들은 미역 따기부터 무레질을 익혀 나간다. 이 시기는 대략 10세에서부터 15세 사이. 미역은 채취를 금지하는 시기가 있지만, 물질을 익히는 어린 소녀들에게는 예외다. 어린 해녀로 하여금 기량을 닦을 기회를 더 주고, 충분한 연습시간을 부여해 주기 위해서이다. 마치 골프에서처럼 처음엔 핸디캡을 주는 식이다. 이런 배려는 하나의 관례로 굳어져 있다.

클럽 없는 골퍼를 상상할 수 없듯, ‘테왁’과 ‘망사리’를 걸러 메지 않은 해녀를 상상할 수는 없다. ‘테왁’과 ‘망사리’는 곧 물질의 상징이다. 이런 해녀 도구가 주어짐으로써 어엿한 하군 해녀로 거듭나는 것이다.

(참고: 해녀박물관. 테왁과 망사리. 테왁은 해녀가 수면에서 몸을 의지하거나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하는 부유(浮游)도구이다. 예전에는 둥글고 알맞은 크기의 박이 이용되었지만, 요즘에는 스티로폴로 대체되었다. 망사리는 채취한 해산물을 집어넣는 그물주머니로 테왁에 매달아 한 세트가 된다. 어린 소녀가 사용하던 자그마한 ‘족은테왁’과 ‘망사리’는 본격적으로 해녀가 되면서 전문가용으로 바뀌게 된다.)

해녀마을에서는 ‘테왁’과 ‘망사리’ 등이 주요 해녀도구이자, 필수 혼수품이다. 특이한 점은 혼수품이지만, 친정에서 마련해 가는 것이 아니라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시아버지 쪽에서 정성껏 만들어 선물한다는 점. 집안의 주요 수입원이자, 경영활동인 물질에 대한 관심은 이렇듯 높다.

어머니의 보호와 코칭 아래 어린 딸들은 테왁을 짚고, 미역을 베는 낫인 ‘물호미’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미역 꼭대기만 베어내 물 위로 나오는 숨 짧은 소녀가 있는가 하면, 제법 미역귀까지 베어내는 숨 길고 승부근성이 큰 소녀도 있다. 프로 코치의 눈엔 잠재 역량이 있는 미래의 선수감이 보이듯, 어린 해녀들은 첫 물질에서 각자의 역량이 가늠된다. 일테면 해녀로서 미래의 성장성까지 아울러 평가되는 셈. 이런 평가 결과는 어디에 쓸까. 평가 결과에 따라 코칭 방식이나, 기대치가 달라진다.

능력주의는 해녀들의 노래에도 잘 드러난다. “내려갈 땐 한 빛, 올라올 땐 천층만층 구만층”이란 속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무자맥질해서 내려갈 때에는 어느 해녀든 꼭 같지만, 물위로 솟아오를 때에는 소득이 제각기 다르다는 뜻이다.

애기해녀들은 훈련이 거듭됨에 따라 물질하는 기량도 하루가 다르게 향상돼 간다. 한편, 어떠한 고난에 부딪히더라도 정면으로 대처하며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나아가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된다. 물론 강철 같은 마음훈련이 뒤따른다. 그러기에 해녀는 “혼백상자 등에 지고” 제주 앞 바다를 드나들고, 멀리 동북아 연안으로 원정 물질을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오랜 훈련의 결과, 두려움 없이 미지의 바다에 뛰어 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경일, <경영리더라면 해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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