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광개토태왕 재임기(391~412)에 이르러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 시기는 우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한 역사적 전환점이 된다. 즉, 고조선 이후 오랫동안 염원해 온 고토회복의 기회를 결정적으로 다시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왕호 그대로 태왕은 ‘토경(土境)’을 널리 열고 국세를 내외에 떨친다. 이는 빛나는 외정(外征)의 결과였다.

하지만 태왕의 경영 성적이 단순히 외정(外征)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즉, 태왕시기 ‘광개토경(廣開土境)’의 본질은 외적 팽창과 더불어 중앙집권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내정 혁신을 통해 내외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한 차원 높여 국가 경쟁력으로 업 그래이드 한 것이다.

능비는 시조의 탄생과 남하 입국의 신성한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태왕 시기에 이르러 ‘서령기업(庶寧其業)하고 부국민은(國富民殷) 오곡풍숙(五穀豊熟)’하게 되었음을 찬양하고 있다. 이 점은 태왕의 경영 결과 태평성대를 이뤘다는 얘기다. 이 같은 표현은 왕권 강화에 따라 이룩된 태왕의 업적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나아가 고구려 사회가 내실 있는 경제적 풍요를 이뤘음을 뜻한다. 이 같이 빛나는 외정과 내정 혁신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이런 다이내믹한 환경이 고구려가 당대 최고의 제국으로 발전해 나가는 원동력이었다.


능비에서 말하는 이런 풍요로운 상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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