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애가 멋진 숙녀가 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를 곳곳에서 발견하곤 한다. 아직 십대인 아이가 거울에 얼굴을 비추며 여드름을 짜고, 머리를 매만지고, 표정 연기를 하고, 맵시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은 성장기 아이들에겐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사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딸이 이렇게 멋지게 커서…….’ 속으로 흐뭇한 마음이 들곤 한다.

큰 딸애에게 생긴 가까운 변화를 나는 최근에야 눈치챘다. 아이가 왜 앞의 머리로 이마를 가리고 싶어하고, 샤기 컷을 해야 하고, 반 친구와 다투고 온 날 왜 침대에 누워 번민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지…….

그날 그 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멋진 딸: “아빤 정말 모르세요? 여자애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때가 언젠 줄 아세요?”

미련퉁이 아빠: “왜? 친구하고 싸웠을 때?”

멋진 딸: “거봐요? 아빤 전혀 모른다니까요. 여자애들은요. 세 가지 상황을 가장 두려워해요. 첫째는요, 나와 누구도 짝이 되려하지 않을 때고요. 둘째는요,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하는 친구가 없을 때고요. 셋째는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같이 올 애가 없어 혼자 오게 되는 거예요. 그것도 모르면서 아빠가 나를 이해한다구요?”

나는 그만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속으로는 그까짓 거야, 네 또래 때에는 다 그랬단다,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지, 그게 뭐 큰일이라도 되냐…… 고 대꾸해주고 싶었지만,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나는 내가 들려주고 싶은 정답 대신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미련퉁이 아빠: “아빠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 줄 아니?”

딸애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본다.

미련퉁이 아빠: “아빠가 언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를 모를 때, 너희들이 아빠의 바람과 달리 나갈 때, 엄마나 너희들이 아플 때…….”

큰애는 그저 나를 쳐다본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아빠의 고민이라는 듯이……. 이로써 우리는 서로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서로가 지닌 두려움이라는 게 뭔지 잘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가 지닌 두려움을 딸애 앞에서 계속 강조하거나 반복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인다.

그날 밤이었다. 나는 내 책상에 메모지가 한 장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빠, 두려워 마세요. 아빠의 두려움이 제 것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지도 마세요. 하지만 모든 게 잘될 거예요. 사랑해요.” 메모지에는 하트 모양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사랑의 징표에는 우리가 나눈 두려움이 써져 있었다.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아직은 철없다고 믿었던 딸애에게서 나는 적잖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큰애가 지닌 따뜻한 마음을 온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로 봐도 맞는 말 아닌가!

과연 내가 지닌 두려움이 아이가 가지는 두려움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두려움이든 사랑으로 극복해갈 수 있다는 딸애의 생각은 편지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이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부모에게는 정신적 성장통을 부여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이끄는 방식이 이런 것인가?
ⓒ전경일.이민경, <부모코칭이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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