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법칙: ‘이 배는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는 맹신의 법칙

-위험은 항시 상존한다. 위험에 노출된 불확실한 환경이야말로 가장 일반적인 환경이며, 경영이 접하게 되는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이 같은 불확실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New York Times

1912년 4월 10일, 세계 최신이며 최대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한 여객선이 영국의 사우댐프턴 항을 떠나 뉴욕을 향해 처녀항해에 오르고 있었다. 배의 규모로 보나, 설계로 보나, 대지와 해양을 다스리는 그리이스 신인 타이탄 족의 이름을 딴 ‘타이타닉(Tatanic) 호’라는 이름으로 보나, 이 여객선은 천하무적으로 보였다. 검은 빛깔로 번쩍이는 선체엔 엷은 황색의 굴뚝 4개, 총톤수 4만 6,328톤을 자랑하고 있었다. 길이는 269.08미터로 약 2센티미터 두께의 강철판을 사용한 2중 바닥이었고, 갑판 아래는 16개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더구나 브리지(선교)에서 단추를 누르면 각 구획의 문이 닫혀 각기 독립된 수밀(水密) 공간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배에는 당시 사람들의 모든 기대에 부응하는 모든 장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4월 14일 일요일, 별이 빛나는 추운 밤, 타이타닉 호는 뉴펀들랜드 섬 남동해역을 22.5노트의 속도로 미끄러지듯 전진하고 있었다. 달빛도 없는 조용한 밤이었고, 기온은 거의 빙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근사한 호화 여객선의 탑승객들은 배의 따스하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축제 기분의 항해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 2,224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이 함께 승선해 있었다. 승객 명부에는 당시 내노라는 큰 부호들과 작위를 가진 명사들의 이름이 기라성처럼 올라 있었다. 그 가운데는 자본가인 존 제이콥 애스터, 메이시 백화점의 소유자인 이시도어 시트라우스, 수명의 영국 귀족, 또한 이 배의 건조자로서 자신만만한 토머스 앤드류 등이 있었다. 앤드루는 이 배야말로 20세기 기술 발달의 축소판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승무원들도 이 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신이라도 이 배를 가라앉힐 수는 없을 것이다!’ 갑판원은 배가 사우탬프턴 항을 미끄러지듯이 출항할 때 선원들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감은 지속되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절대 불침(不沈)’의 거함은 퀸스타운을 출발한 지 사흘 후에 앞의 진로 상에 빙산이 떠 있다는 전문을 받게 된다. 최초의 빙산 경고는 커나드 사의 카로니아 호(선장 바르)에서 온 것이었다.

<타이타닉호 선장께. 서쪽으로 향한 증기선들이 북위 42도, 서경 49~51도 사이에 빙산과 작은 얼음덩이 및 얼음 벌판을 보고하고 있음. - 바르>

무전실에서는 잭 필립스와 해롤드 브라이드가 그 지역에 있는 다른 배들로부터 빙산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무선 통신사들은 그 전문을 무시해 버렸다. 그 배가 절대로 침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수차례나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고 메시지를 해마다 그 시기에는 으레껏 되풀이 되는 경고쯤으로 취급하고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거함들이 위험을 간과하게 되는 내부의 방관자적 태도, 부적절한 의사결정과 많은 점에서 닮은 꼴이 그날 밤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몇 시간 후에 다시 한 번 같은 내용의 전문이 들어왔다. 무선통신사는 그 통신을 들었으나 받아 적지 않았다. 세 번째 전문이 들어 왔다. 통신사는 이번에는 그 통신을 적어서 E. J. 스미드 선장에게 전했다. 그 지시들은 선장과 간부들에게 전달되었다. 선장은 그 전문을 읽어 보고는 아무런 논평 없이 그 배의 소유 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그 전문을 보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한 시간쯤 후에, 다시 네 번째 경고가 들어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선장이 말했다. ‘승객들에게 빙산을 조심하도록 일러줘라.’ 그것이 전부였다. 승객들이 빙산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그것은 매우 모호하고, 넌센스에 가까운 지시였으며, 주의를 환기시키는 의사결정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 있어 보이는 지시였다.

타이타닉호는 22.5노트, 전속력으로 어둠을 가르며 항해했다. 그날 밤 9시 30분에 다섯 번째 전문이 들어왔다. 이렇게 결정적인 빙산 경고는 다섯 시간 이상이나 잊혀 지거나 무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배의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얼음덩이 천지인 북대서양 지역으로 가속도를 붙이며 들어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답은, 같은 시기 대서양을 항해하던 올림픽호의 최고 횡단 기록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밤 9시 30분, 타이타닉은 뉴펀들랜드 섬 남동해역의 케이프 레이스(Cape Race)에 접하게 되었다. 이때에는 친구들과 친척들과 사업상 계약 등으로 보내는 승객들의 일상의 무전들로 무전실은 혼잡을 이루었다. 10단어에 3달러를 받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무선 요금에도 불구하고 1등석의 승객들은 경쟁적으로 타이타닉 호에서 무선 연락을 보냈다. 외부로 나가는 무선 송신기는 고장 나 6시간 후에나 복구되었다. 거드름을 피우며 메시지를 작성하는 일은 이 배에서 제공하는 으리으리한 시설과 엄청난 오락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따분하기만 한 항해 중에 부릴 수 있는 기분전환 방법의 하나였을 뿐이다. 이로 인해 이 시간에 전달된 빙산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경고는 무시되었다. 증기선인 메사바(Mesaba)가 급전을 띄워서 타이타닉이 진행하고 있는 방향에 거대한 빙산이 펼쳐져 있다고 전해 주었지만, 이 마지막 결정적인 정보도 끝내 무시되고 말았다.

11시 30분에 무선실에는 다른 배에서 전문이 들어왔다.

<우리는 멈춰 섰고 얼음에 포위되어 있음....> 그러나 위치를 말하기도 전에 타이타닉호의 무선사가 말했다. <물러서서 입 다물 것. 당신은 남의 신호에 끼어들고 있다. 나는 지금 레이스 곶과 통신 중임.> 그리고는 통신을 끊어버렸다.

10분후, 마스트(돛대) 꼭대기의 망대에서는 프레드릭 플리트가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때, 그는 배 항로 바로 앞에 검은 물체가 떠있음을 알아차렸다. 빙산이었다! 빙산은 망령처럼 어둠속에서 어슴프레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타이타닉호의 조종을 울렸다. 망루에서 종을 세 번 친다는 것은 바로 앞쪽에 물체가 있다는 신호였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방에 빙산이다!’

그는 당황하여 경종을 울리고 전화로 브리지에 보고했다. 지휘소에 있던 1등 항해사 머독은 '전속력으로 후진'할 것과 '우측으로 선회'할 것을 명령하였다. 당직 항해사는 즉각 모든 엔진을 멈추게 하고 키를 우현으로 최대한 돌리도록 명령하였다. 그러자 배는 천천히 돌기 시작했고, 빙산을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항해사의 행동은 민첩했지만, 그러나 명령은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일이 너무 늦었다.

귀에 거슬리는 긁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머독은 배가 빙산에 부딪쳤음을 깨달았다. 감시원으로부터 보고를 접수한지 30초가 지났을까 말까 한 시간에 당직 항해사는 꾸르륵꾸르륵 하는 무서운 소리를 들었다. 빙산이 배의 밑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타닉이 침몰하고 난 후의 얘기지만, 이때의 배 옆구리에 난 깊은 상처는 지금은 바닷 속 깊이 모래에 파묻혀 보이지는 않는다. 뱃사람 최대의 악몽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작은 얼음 조각에서 농구 공 크기의 얼음에 이르기까지 대량의 얼음이 우현의 갑판위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배와 빙산은 길어야 10초 동안 접촉했으나, 약 90미터 길이의 이곳저곳에 10센티미터의 상처를 입혔다.

머독은 즉시 방수용 문들을 닫도록 명령하였다. 16개실의 방수실이 즉각 봉해졌으며,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안전해요. 이 배는 절대로 가라앉지 않으니까.’ 그러나 차단벽은 하나씩 붕괴되어 갔다. 배의 운명은 암울했다. 거의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얼음의 홍수에 직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기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재난이 덮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승객들은 얼음 조각들을 주워 올려 서로 부딪쳐 깨뜨리면서 장난 치고 있었다. 2등 흡연실에 있던 누군가는 그 장남삼아 농담으로, ‘이 칵테일에 넣게 얼음을 몇 개 주시구려’라고 청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얼음을 기념품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드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람들은 테이블에서 눈을 돌려 밖을 보았으나, 현창(舷窓) 밖으로 빙산이 지나가는 것을 본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게임에 물두했다.

선장에게서도 조금도 당황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34년간의 항해 경력을 지닌 베테랑인 스미드 선장은 배 건조사인 토머스 앤드류와 배를 한 바퀴 돌기 위해 막 걸음을 옮기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구명보트를 내리거나 비번 항해사를 깨우거나 혹은 조난신호를 발신하게 하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것은 선장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 처참한 것이었다.

빙산은 이미 선체의 리벳(rivet: 철판을 이어 고정시키는 큰 대가리 못)을 쥐어뜯고, 강철판에 구멍을 뚫어 놓았던 것이다. 이 바닥에는 무게 270톤이 나가는 50만개의 리벳이 쓰였다. 그것은 배 전체를 만들기 위한 못의 6분의 1분량에 해당된다. 후에 난파선에서 수거한 강철을 실험해 본 결과 타이타닉 호에 사용된 강철 종류는 영하 1도 이하의 수온에서 부서지기 쉽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선체 자체에 치명적인 결함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10분 사이에 해수는 용골보다도 5미터나 높게 솟아오르고, 16개 구획실 가운데 5구획실이 물을 뒤집어썼으며 가장 낮은 갑판 위의 승무원실과 조타실 도어 밑에서도 물길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형 사고가 급박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선장은 승무원에게 펌프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30분도 채 지나기 전에 그는 물이 무서운 속도로 침입하여 배수 작업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배의 건조 총책임자인 토마스 앤드류는 스미드 선장을 만나 타이타닉호가 종국을 맞이했음을 침통하게 알려 주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스미드 선장은 타이타닉에서 하선할 것을 명령했다. 선장은 구명보트를 내리고 항해중의 다른 선박에 조난 신호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배의 전 승객수에 비하면, 구명보트의 정원은 훨씬 부족한 상태였다. 배가 침몰할 위험에 처했으니 승객들은 구명보트를 타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승객들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배에는 구명보트 14척, 비상용 소형 돛배 2척, 공기 구명정 4척이 탑재되어 있었고, 공식 수용인원은 1,178명으로 승선 인원의 3분의 1에 해당되었다. 타이타닉의 비극이 있은 다음에야 승선 인원 전원을 위해 구명보트를 장착하게 하는 원칙은 수용되게 된다. 나중에야 밝혀진 일이지만, 최초 배 설계시에는 구명보트가 64척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은 40척으로 줄어들었고, 그 다음엔 다시 23척으로 점점 더 줄다가 선박 제작팀과 소유주 사이에 회의 끝에 결국 20척으로 줄어들었다. 소유주들은 더 넓은 공간을 산책로로 사용하길 바랬던 것이다.

혼란 속에서 운 좋게 구명보트에 옮겨 탈 수 있었던 사람들은 타이타닉에 타고 있던 2,200여 명 중에서 전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과 711명의 승객에 불과했다. 구명보트에는 최소한 500명이 더 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야 확인되었다. 승객들이 구명보트에 옮겨 타려는 아수라장에서 무전실의 무전수들은 타이타닉의 위치를 알리는 다급한 전문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배는 심하게 기울어져 엄한의 북대서양 속으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오전 2시 15분, 빙산과 충돌한지 대략 2시간 반 후 드디어 바닷물은 타이타닉 호의 뱃머리에 올라와 철썩거렸다. 선미(고물)를 공중에 높이 들어 올려 배가 순간적으로 수직으로 섰다. 그러자 엔진과 승강기, 비품류와 식료품, 유리 식기와 석탄 따위 배 안의 온갖 것이 뛰어 나와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는 잠시 후 음산한 정적만이 남았다. 이렇게 호화 여객선은 1,513명을 태운 채 바다의 쓰레기로 사라지고 말았다.

빙산에 부딪친 지 세 시간도 안된 새벽 2시 20분에 이 배는 침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도 다 가라 앉고 말았다. 최대의 여객선이었던 타이타닉호가 남긴 것은 부분적으로 사람을 채운 채 칠흑 같은 어두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구명보트들뿐이었다.

타이타닉의 침몰과 관련되어 소유사인 화이트 스타사는 회사 운영에서 수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불법적인 기업경영, 무모한 정책 결정, 불운, 사고의 파국 등 비상식적인 진기한 기록으로 철저하게 ‘벼랑 끝에 선’ 기업운영을 해 왔고, 이것이 이 회사 정신의 본질이었다. 약 2시간 후 최초의 구조선이 현장에 도착했다. 승무원들은 타이타닉호의 구명보트가 빙산의 부스러기로 덮인 10 킬로제곱미터의 해역에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겨우 동이 트기 시작한 어스름 속에서는 보트와 얼음은 서로 구분되지 않았다.

세계에서 제1의 거대한 이 여객선을 침몰시킨 빙산이 어느 것이었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거대한 배는 빙산에 충돌했고, 그 빙산은 300피트나 되게 길게 갈라졌다는 것 밖에는. 이 빙산은 높이 25미터, 길이 약 20미터로 그랜드 뱅크의 빙산으로서는 극히 흔한 크기인데, 그 추정 배수량은 20만 톤이어서 타이타닉 호의 4배나 되었다. 거대한 중량이 전속으로 항해 중이던 배의 힘과 합쳐져 타이타닉호의 강철로 된 선체를 눈 깜짝할 사이에 잡아 찢었던 것이다.

타이타닉호가 사고를 당한 당시 그린랜드와 북부 지역은 30년 만에 가장 온화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빙산과 얼음들은 래브라도 해류의 영향을 받아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자연의 기후 조건마저도 사고를 유발하기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동북쪽으로 따뜻한 걸프 해류에 떠밀려 빙산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대서양 횡단 해상 통로로 밀려들어 온 것이다.

이 얼음 덩어리가 항해에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의 범주 속한다. 그런 정보는 당시 널리 퍼지던 무선 설비의 영향으로 쉽게 전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얼음 밀집 지역으로 항해를 밀어 붙인 것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그들은 왜 이 같은 선택을 했을까? 흥미로운 일이지만, 화이트 스타사의 유리 액자에 들어있는 선원들을 위한 기본 수칙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항해에서 가장 주의를 요하는 것은 생명의 중요성이다. 다른 어떤 고려보다 안전이 우선된다.’

그러나 우선시된 것은 무분별과 탐욕과 무책임이었다.

빙산은 배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움직이지 않는 섬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해류에 떠밀려 움직이는 수십만 톤의 섬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얼음덩이가 스스로 녹아 버리도록 놓아두는 것뿐이다. 위험 요소가 스스로 해소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얘기다. 분명한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배라도 빙산의 움직임에 단 1밀리미터의 영향도 줄 수 없다는 점이다.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빙산처럼 북반구에 떠도는 대부분의 빙산들은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그린랜드의 거대한 디스코만으로 흘러나온다. 이 빙산들이 뉴펀들랜드 바깥쪽 그랜드 뱅크에 도달하는 데에는 대략 2년 정도가 걸린다. 날씨가 따뜻하면 이 거대한 얼음은 조각나서 작은 빙산이 되고, 그렇게 되면 위험은 더욱 증대된다. 작은 얼음은 마치 산탄처럼 바다에 흩어져 매시간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이다.

빙산에 대한 두려움은 오랜 시간, 인류가 배를 건조하고, 바다로 나가면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옛날에는 빙산의 재난을 신의 뜻으로 여겨 두려운 나머지 복종해야만 하는 존재로 여겼다. 이런 생각은 19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승객수는 증가하였고, 그만큼 조난자의 수도 늘어났다. 바다로 많이 나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던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1882년에서 1890년에 걸쳐, 그랜드 뱅크 부근을 표류중인 빙산 때문에 침몰한 배가 14척이나 되었고, 그밖에도 40척이나 피해를 입었다. 많은 배가 행방불명되었는데, 그것도 빙산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타이타닉의 침몰 이후 많은 해양 국가들은 북위 42도선까지 남하해 온 빙산이 가공할 위협적 존재로 인식돼 공동대처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해상 교통로에 끼어 들어오는 빙산에 대한 안전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진 까닭이었다. 1주일도 지나기 전에 미 해군은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해역에서 가까운 그랜드 뱅크에 2척의 소형 순양함을 파견했다. 이 순양함의 임무는 빙산을 감시하고, 그 위치의 확인해 항해 중의 선박에 빙산의 위치를 통보하는 것이었다.

이듬해에는 해안 경비대의 전신인 세계 감시국 소속의 2척의 감시선이 빙산 감시의 임무를 인계받았다. 1914년 1월 30일, 13개 해양국 대표가 런던에서 회의를 열고 빙산 감시의 책임을 분담할 것을 합의했다. 각국은 그 구체적 조치로 현재의 국제 빙산 감시대의 창설을 승인했다. 이 조직은 조인국의 출자에 의해 경비를 충당하며, 미국 해안 경비대가 그 실지 운영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을 제외하고는 그 이후 매년 미국 해안 경비대의 감시선은 국제 해운업의 안전을 위해 ‘빙산골목’으로 알려져 있는 그랜드 뱅크 부근의 95만 제곱킬로미터 해역을 샅샅이 돌아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 북위 52도~42도, 서경 40도~50도의 해역에서 해안 경비대는 이 해역에 들어오는 빙산의 수를 세고 크기를 측정하며 표류방향을 확인하면서 빙산 감시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재난 이후에야 대책 마련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는 늘 문제 이전의 대책이 아닌, 위험이 표면화된 다음에 대책을 세우는 사후약방문의 미봉책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없애려는 관심과 노력은 왜 무시되는 것일까? 수많은 기업들이 좌초하게 되는 원인과 일맥상통하는 방식은 왜 개선되지 못하는 것일까? 타이타닉 침몰은 개인과 기업의 향방, 혹은 파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늘 그 자체로 존재한다.

타이타닉 침몰과 관련지어 주목해 보게 되는 이론이 있다. 캐나라 심리학자 제럴드 와일드라는 사람은 ‘위험의 항상성(恒常性)이론’이라는 걸 세상에 내놓았다. 거창해 보이는 이 이론은 사실상 간단명료하다. 핵심을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일정 수준의 위험은 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보다 안전해 지고나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원래의 위험 수준으로 되돌아 가려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차선을 늘리고 도로를 넓혀 놓으면 운전자들은 전보다 더 안전하다는 생각에 차를 더 빨리 몰게 되어 도로 개선이 가져다주는 안전 혜택을 상쇄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고는 줄지 않는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든간에 위험은 항시 내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타이타닉은 배 자체로는 그 당시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견고한 배였다. 그러나 배의 견고함은 어떤 경우에도 빙산을 이길 수 없다. 빙산은 보이는 것 이상이다. 위험의 뿌리는 적어도 드러나는 것의 8 배 이상이나 크다. 우리 기업이 서 있는 현 위치가 그렇다. 늘 불안하고, 불확실한 국면에로의 초대가 기업사의 연속이다.

빙산의 위험이 감소되기 위해서는 태양열과 파도와 시간이 필요하다. 북 대서양을 떠내려 오는 이 위험 덩어리는 위험이 항시 우리 내부에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빙산의 위험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자연적 조건이 작용하며.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는 태도로는 오로지 ‘피하는 것 뿐’이다.

다시 이 거대한 선박, 타이타닉으로 돌아가 보자. 배와 빙산이 서로 부딪친 후 침몰한 타이타닉을 뒤로 하고 빙산은 어떻게 되었을까? 추정컨대, 사고가 난 후 이 빙산은 1.6킬로미터 정도 떠내려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간상으로 오전 6~8시 사이에 동남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뜻한다.

타이타닉이 침몰한 늦은 아침, 어느 독일 선박의 주방장이 밑 부분을 따라 붉은 빛깔이 도는 큰 상처가 있는 빙산의 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타이타닉 호의 홀수선에 그어진 붉은 페인트 자국으로 추측된다. 그 후로 그 방산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빙산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기에 이 사고의 핵심이 있다. 그 빙산은 원래 거대한 붕빙에서 분리된 것이다. 원래의 궤도에 의하면, 빙산은 캐나다의 엘즈미르 섬의 붕빙에서 분리되어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보퍼트 순환류를 따라 보퍼트 해 내에 머물러야 한다. 그 지점을 도는 것이 빙산의 운명이다. 그러나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빙산처럼 많은 수의 빙산들이 궤도를 이탈해 극횡단 해류와 동그린 랜드 해류를 타고 북대서양 해상에 이르게 된다. 빙산 하나하나는 스스로의 운명에서 불확실성을 띄고 원래의 무리에서 분리되어 불행하게도 아래로 항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즉, 길 잃은 얼음인 것이다.

이런 빙산의 행로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불운한 운명이며, 동시에 선박에의 위험 요인이 된다. 이 같은 위험은 항시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무시하는 건, 빙산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있다.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빙산은 더 이상 태양과 파도의 도전에 맞서지 못하고 굴복한 채 녹아 없었졌을 테지만, 오늘도 빙산은 계속 내려오고 있다. 빙산은 여전히 생존해 있다! 위험의 총량이나, 위험이 나타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으나, 문제는 그것에 대한 인식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에는 어떤 위험이 계속 감지되지 않고 간과된 채 확장되고 있는가? 개인적인 위험요소는 어떤가?



<타이타닉 침몰의 교훈>


  오늘날 리더십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이끌어 가는 조직은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크고 작은 배와 같다. 리더는 우리와 함께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책임을 부여받은 선장이다. 그 소명은 위대하고 지고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뒤따르는 사람들의 생존까지도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다. '영향력'이라는 단어는 리더십을 한 마디로 정의할 때 얼른 떠올릴 수 있는 최상의 단어이다. 하지만 위험에의 충실한 대응없는 영향력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스미드 선장의 경우가 그랬다. 그가 범한 과실 하나만 해도 이 엄청난 비극을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의 한계와 극복할 점은 무엇인가?


․ 자기의 본능만 믿고 눈이 가리워져 있었다.

․ 자기의 적(敵)인 빙산을 과소평가 했다.

․ 자신과  배의 능력을 과대평가 했다.

․ 자기 선원들과 배를 이끌고 지나친 모험을 감행했다.

․ 조심하지 않고 배를 과도하게 몰고 나갔다.

․ 그의 자만심이 효과적인 리더십을 가로막고 있었다.

․ 그는 위기의 순간에 자기 부하들 곁을 떠나 있었고, 즉각적이며, 효과적이고, 사려 깊은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최신의 기술에 맹신했다.

․ 과거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현재의 위기를 간과했다.

․ 위험이 다가 온다는 계속된 경고를 무시했다.

․ 그는 빙하가 떠내려 오는 바다의 환경적인 현실을 무시했다.


타이타닉과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은 스미드 선장의 최대의 적은 과거에 그가 이룩한 리더로서의 업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리더십 기술을 완벽히 갖추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조심할 필요가 있었던 때에 거만해져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선장의 귀감이 된다고 여겼던 스미드 선장은 그날 밤 저지른 지속적인 치명적 실수로 인해 1517명이라는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켰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누구의 책임일까? 우선, 스미드 선장이 비난받아 마땅한 제1 순위 인물이다. 그러나 그와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그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배를 설계하고 건조한 사람들이다. 배의 소유주는 무분별했고, 배의 능력을 과신했다. 그들 역시 그 비운의 리더십 팀의 일부였다. 예방할 수 있었던 세계 최대 해난 사고 중 하나인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의 책임은 이들 모두에게 있다. 배가 가라 안게 될지도 모르는데, 칵테일 잔에 깨어진 얼음 조각을 집어넣으며 농담을 한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은 비극의 효과를 더욱 높여주기 위한 희극적 장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타이타닉 사고가 있고나서 미국과 영국은 각기 청문회를 열었는데, 그때 놀라운 음모가 제기되었다. 타이타닉의 침몰이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었다. ‘올림픽’이라고 하는, 타이타닉과  겉모습이 동일한 배가 그 무렵에 건조되어 있었고, 두 배 사이에 선수(船首)가 바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망루 감시원의 쌍안경은 사라지고 없었고, 출항 전부터 배의 밑바닥 석탄 창고에서는 불이 나고 있었다. 더구나 사건 이후 타이타닉의 설계도는 귀신같이 사라졌다. 이 배의 소유사인 화이트 스타사는 심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고, 배를 일부로 가리 앉혀 버리는 것은 회사로 봐서는 보험금을 탈 수 있는 큰 기회이자, 이익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이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화이트 스타사가 핵심적인 증인들이 매수된 것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다. 


   더구나 가장 의심스러웠던 점은 타이타닉호의 진짜 소유주였던 은행가이자 대기업가인 J.P모건은 이 사건에서 완전히 감추어졌다는 점이다. 그를 포함한 55명의 인사들은 출발 직전에 예약을 취소했다. 미국 무선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이 날의 사건이 있는 동안, 영국 청문회를 지휘했던 법무장관은 이제 막 주가가 치솟기 시작한 마르코니 무전 회사의 주식 내부 거래에 간여하고 있었다. 청문회 중 화이트 스타사의 사장인 브루스 이즈메이는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모든 것은 비밀스러웠고, 은폐되었으며, 해저의 가라앉은 배처럼 상당수 미궁으로 남았다.


   빙산은 타이타닉을 침몰시키는데 이용된 도구에 불과했다. 타이타닉에 부딪친 빙산 또한 배의 페인트를 옆구리에 묻힌 채 서서히 남하다가 녹아갔을 것이다. 모든 위험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자체 진화의 방식이 있다. 그것이 어떤 일, 사건 등과 만나는가에 따라 피해나 희생의 범위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 「Titanic Diaster(Aprial 1912)」, Sydney W. Head, Christopher H. Sterling & Lemuel B. Schofield, 『Broadcasting in America』, Houghton Mifflin Company, 1994, 28쪽.)
  타이타닉 참사는 전 세계적으로 선박에 마르코니의 무선국을 장착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래드 플래그 제1법칙: 위험의 항상성 법칙

-위험은 항시 상존한다. 다만, 피해가야 할 뿐이다. 위험이 무시될 때, 잠복되어 있던 문제는 마침내 비극적인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다.


<징후 예측과 위험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들 >


1. 조직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사건, 사고 이전의 각종 징후가 내포하는 가장 본질적인 원인, 즉 진인(眞因)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분석은 상시적으로 체계화되어 이루어지고 있는가? 조직은 래드 플래그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있는가? 

2. 잠재된 위험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 직원간, 직원과 경영층간, 회사와 고객간 래드 플래그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고객 불만의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3. 위험이 몰고 오는 결과는 무엇인가? 파산, 구금, 법적 책임과 같은 결과에 대한 대응책뿐만 아니라, 은폐나 미봉책이 아닌, 문제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직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훈련을 하고 있는가?

4. 위험은 왜 간과되는가? 위험이 무시되거나 위험을 키우는 태도들은 무엇인가? 조직 내부에서 위험간과를 유발하는 인자는 무엇인가? 우리 조직에 잠재되어 있을지 모르는 방관자적 태도, 무능, 야심, 관료주의, 주관주의, 시스템 문제, 커뮤니케이션 문제 등에 대해 점검해 보자.

5. 우리 회사는 위험요인을 찾아낼 역량이 있는가? 위험을 방지하는 조직 내부의 인적 자원에 대해 토의해 보자.


<참고자료>
로빈 가디너, 단 반 데어 바트, 『타이타닉의 수수께끼』, 황금가지, 1998.
로버트 H. 슐러, 『삶의 변화를 위하여( Reach out for new life)』, 우석, 1985.
그 외 각종 저널들.

ⓒ전경일. <레드 플레그: 당신의 맹신을 깨뜨리는 14가지 싸인>(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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