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래 전 외국의 한 방송국에서 프로듀셔 보조 일을 할 때였습니다. 미국 각지에서 선발된 인턴사원들이 있었는데, 연수 기간이 끝나던 날, 그들에게는 각자의 소감을 밝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무엇을 배웠는지 발표해 보라고 하니까, 한 여학생이 일어나 불평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복사도 할 수 있고, 심부름도 잘 하고, 잡무도 잘 처리하죠. 여기서 배운 건 이게 다죠.”

여학생은 같은 인턴사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냉소적으로 말했습니다. 질문을 했던 관리자는 그녀의 얘기를 듣는 순간 당황한 듯하더니 잠시 후 이렇게 대꾸했습다.

“그렇습니다. 그건 여기 들어온 누구건 거쳐 간 프로세스죠. 보람 없고, 인내심에 한계를 보이게 되지만, 적어도 그 일을 통해 자기를 참는 법은 배웠을 겁니다. 카메라를 들고 전쟁터를 누비거나, 파도가 출렁이는 먼 바다로 나가 똥물을 토해내며 몸집이 10톤이나 되는 지상에서 가장 큰 흰수염 고래를 찍을 때가 되어서야 이런 인내심을 배우려 한다면 그땐 너무 늦을 테니까요.”

관리 직원의 말에 냉소적 분위기는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그때 프로근성이라는 것, 일에 대한 태도라는 것, 꾸준한 노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보기에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일을 대하는 태도와 그 직원을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에 대해 어떤 자기 관점을 갖고 있습니까? 대부분은 회사의 기획부서나 재무조정실 같이 뭔가 탑의 의사결정을 이끌어 내는 일이 가장 폼 나고 힘 센 일로 인지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은 자신이 어떤 보람을 느끼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요?

제 주변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다니는 회사 화장실을 도맡아 청소하는 용역회사 아주머니는 자신의 깔끔한 성격 때문에 세면대에서부터 변기까지 청소를 마무리 하고 나면 직원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 분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하루 일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완결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찮은가, 중대한가 여부가 아닙니다. 시작과 끝을 본 하루의 완결판이기에 느끼는 만족감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까요? 이런 느낌은 나중에라도 생기게 되나요?

우리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기존의 시각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누군가에게 지시하고 피드백을 받아 처리하는 일만이 존귀한 것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일은 그 일 때문에 불행해 지기만 합니다. 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을 우선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눈빛과 표정은 아름답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느끼는 사람의 몸짓은 남들조차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어느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만든다는 생각 하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높이며 재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일상적인 일의 굴레에 빠져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창조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정신을 살찌우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지인은 국내 내노라는 기업의 구조본에서 그룹의 재무 파트를 송두리채 주물럭거리는 분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그 일에 대해 그 분은 오히려 죽을 맛이라고 푸념합니다. ‘내가 만지는 돈이 전부 남의 돈‘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한낱 월급쟁이인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 빨리 창업해야지.‘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고 그는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게다가 오너 일가에서 쓰는 돈을 보면, 왠지 자신도 모르게 정말 없이 사는 빈민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을 지경이랍니다. 그가 맡고 있는 일이 그에게 행복을 주고 있을까요? 그는 스스로 ’불행의 품을 팔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이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보셨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은 크든 작든 일에서 만족을 느낍니까? 불만족스러운 일을 통한 하루의 시간이 8시간이면, 1년이면 2,112 시간을 직장에서 불행하게 보내는 것이며, 10년이면 2만1천1백 시간을 불만족 속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라디오를 틀어 놓고 흥얼거리며 구두를 닦는 여러분 빌딩 앞의 신기료 아저씨보다 여러분이 과연 행복할까요?

우리는 일에서 얻어야 할 것의 본질과 우리의 허상을 명확히 구별해야 합니다. 일이 나를 잡아먹는지, 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냉철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어떤 신입사원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친구 중에 금융회사에 들어간 동기는 올해 펀드가 대박 터지며 자신이 받는 연봉의 두 배나 되는 돈을 벌어갔다고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부러운 면도 있을테지만, 그 사원은 현명하게도 “아마도 제 친구는 이제 곧 집안사람들 다 끌어다가 펀드에 가입시켜야 할 테고, 곧 죽을상이 될 거예요.”라며 말을 끝맺었습니다. 슬기로움을 지닌 사원인 것이죠.

우리는 일 속에서 자신을 잃기 쉽습니다. 일은 우리에게 경제적 대가를 부여해 주지만, 때로는 유혹의 길로 빠져들게도 합니다. 제 경험상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자신을 키우는 일입니다. 자신을 부단히도 단련시키고, 한계를 두지 않고 키워내며, 인생과 일의 보람을 알게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일 아닐까요?

여러분의 직장은 어떤가요?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은 평생 걸고 픈 일인가요? 우리가 너무 늦게 이 질문을 하면, 그때는 이미 그 좋은 일들을 더 이상 해 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제대로 만들어 가는 일을 찾고 거기에 신명을 불어 넣는 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입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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