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법칙: ‘딱 한번만 더’를 부르는 유혹의 법칙

  -사업의 세계에서는 진퇴를 알아야 한다. 질주할 때가 있는가 하면, 멈춰야 할 때가 있다. 이 점을 모른다면 그 기업은 필시 매우 고통스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진격을 통해 성취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 성취는 여러 제조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신만을 믿는 순간, 스스로 독안에 든 쥐가 된다. 여기 그러한 적절한 예가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과도한 야망은 사업을 위기로 끌고 가는 것은 물론, 끝내 개인적 파탄으로 몰고 간다. 앨버트 J. 던랩이라는 사람이 이런 예에 적합할 것이다. 인수합병, 구조조정을 통해 승승장구하던 던랩이 한 순간 무너지게 된 것은 원칙 없는 욕망이 불러일으킨 예측된 결과였다.

우선 그의 배경을 알아보자. 던랩은 뉴저지 조선소에 다니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언젠가 빈민가에서 벗어나 크게 성공한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은 그의 삶을 고무시키는데 주요 목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미식축구 선구로 활약해 베르겐 카운티 올스타팀에 선발되기도 했고, 대학은 웨스트포인트를 나왔다. 군대에 가서는 낙하산부대에서 근무했다.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저돌적으로 재빠르게 자신의 계획을 행동에 옮겼다. 이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경비를 사정없이 줄였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말 그대로 냉혈한의 모습을 취했다. 그는 회사 내 무서운 보스로 통했다. 조직 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의 경영방식은 짧은 시간 내 확실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투자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짧은 시간 내 투자회임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욕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종종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대가를 치르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배웠다. 오늘날까지 내 자신을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잘 해나가지 못하면 그 순간 나는 내가 얻은 부와 성공을 누릴 자격을 잃게 된다. 유별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에 지배되어 왔다.”

기업이 여러 이해집단과 관련되어 있고, 어느 한 퍼즐이 빠질 때 생길 수 있는 치명적 문제를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는 보다 신중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1983년, 던랩은 기업 인수 후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일회용 컵 제조회사인 릴리 튤립(lily Tulip Co.)의 CEO로 취임한다. 그는 평소 자신이 가진 경영철학을 즉시 실천에 옮겼다. 본사의 직원 수를 십분의 일로 줄이고, 공장 문을 닫고, 회사의 전용비행기를 팔아버렸다. 그리하여 1980년대 중반 그가 회사를 떠날 때, 릴리 튤립은 건강한 기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방식이 먹힌 것이다.

1980년대 후반, 그는 유명한 기업사냥꾼 제임스 골드스미스 경과 손잡고 그가 인수한 크라운 젤러박(Cnfwn Zellerback)과 인터내셔널 다이아몬드(Intemational Diamond)의 구조조정에 관여한다. 1991년에는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는 호주 재벌 기업인 컨솔리데이티드 프레스 지주회사(Consolidated Press Holdings)를 위해서 일했다. 2년에 걸친 무지막지한 구조조정 끝에 회사는 부채 청산에 성공한다.

제임스 경은 그를 격려하고 그가 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세상인 엄청난 부와 권력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를 처음으로 ‘양복 입은 람보’라고 부른 사람도 제임스 경이었다. 던랩은 자신의 다른 별명인 ‘전기톱’에 대해서는 싫어했지만 ‘람보’라는 별명은 좋아했다. ‘전기톱’이라는 별명은 케리 패커를 위해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면서 호주에 체류하던 시기에 호주 언론이 처음으로 붙인 것이었다.

“나는 람보 영화를 좋아한다. 람보는 승산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이기는 사나이다. 머리통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최악의 상황에 뛰어 든다. 그렇다고 실제로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 법은 없다. 결국 그는 성공하고 악한들을 모두 제거한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찾아준다. 내가 하는 일도 그와 같다.”

성과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졸지에 1억 달러를 거머쥔 억만장자가 된다. 그때 그의 나이 55세였다. 이 무렵, 스코트 제지는 던랩에게 회사를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 영입 조건으로 스코트 제지는 플로리다에 있는 던랩의 320만 달러짜리 집을 회사에서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스코트 제지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1989년 이래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주당수익률은 61퍼센트나 떨어져 있었고, 1993년에는 2억7,700달러의 손실을 냈다. 스코트 제지의 부진 요인은 상업용제지 사업부인 S. D. 워렌 때문이었다. 1990년, 스코트는 워렌의 생산용량을 대폭 증가시키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는데, 당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불황이 몰아치는 최악의 시기였다. 스코트는 세 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버둥대고 있었다. 당시 스코트의 실적이 얼마나 저조했는지는 이 회사의 주요 경쟁사인 P&G와 킴벌리 클라크(Kimberly-Clark)와 비교해 보아도 잘 드러난다.


<매출대비 순익비율>

스코트, 킴벌리 클라크, P&G 간의 비교(1990~1993년)

 

1990

1991

1992

1993

스코트

3.8%

-1.8%

4.3%

-7.7%

P&G

6.6

6.6

6.4

-2.1*

킴벌리 클라크

6.8

7.5

1.9

7.3

• 출처 : 기업 연례 보고서

* 1993년 P&G 적자는 회계변경으로 인한 특별비용이 원인임.

극단의 처방을 쓰지 않으면 회사는 문닫을 형편이었고, 이 병을 치유하는 데 던랩이 적임자로 떠올랐다. 던랩은 1994년 4월 스코트 제지의 CEO로 취임한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그의 특유의 ‘사슬톱 전략’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취임하던 날, 그는 구조조정의 성공을 장담하며 자신의 돈 2백만 달러를 스코트에 투자했다. 그리고 기업가보다는 투자자 마인드로 몇 달 후 이 회사의 주가가 30퍼센트 오르자, 다시 2백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취임한 지 몇 시간 지나 그는 이전에 자신과 함께 일했던 3명의 자기 수족을 중역으로 영입한다. 그리고 이튼 날에는 회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경영위원회를 해체시켜 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날에는 그 회사의 중역 11명 중 9명을 자른다. 또한 네 번째 날에는 예전의 경영진이 준비한 책장에 꽂혀있던 서류들을 모두 폐기시켜 버린다. 구조조정의 선수를 친 것이다. 상부층에 대한 그의 이러한 구조조정은 나름대로 자기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신 스코트 제지 경영층에 대한 던랩의 생각은 명확했다.

“경영진은 게으르고 잠만 잤다. 그러나 그들은 살찌고 행복했다. 현실을 도외시한 급여와 상여금 덕분이었다. 이러한 거짓이 꼬리를 잡히면 목을 잃을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알았다. 그래서 방패삼아 황금낙하산을 탓다. 낙하산은 무능한 사람이 내쫓길 경우에 최종적인, 받을 가치가 없는 거액을 보장해 주었다.”

그의 말마따나 당시 스코트 제지에는 관료주의가 미친듯이 날뛰고 있었다. 게다가 명분에 휩싸여 1993년에는 2억 7,700만 달러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1994년에 300만 달러를 자선기부금으로 따로 떼어놓고 있었다.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난 1994년 6월 연례모임에서, 그는 향후 1년 동안 추진할 4가지 주요 목표를 발표했다. 첫째, 이 회사의 비전략적 자산, 특히 과거 수년 동안 이 회사의 주요 확대자금의 수혜자였던 인쇄 및 출판용지 전용사업부인 S. D. 워렌 사업부를 팔아버린다. 둘째, 능력 있고 추진력 있는 고위 간부들로 구성된 핵심기획팀을 수립한다. 셋째, 단 한 번에 대대적이고 전방위적인 엄청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넷째, 스코트의 상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기 위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

이때 던랩이 추진한 구조조정 규모는 미국 기업 역사상 최고의 기록으로 남는다. 며칠 새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2만 5,900개의 자리 중 1만 1,000개가 없어졌다. 여기에는 본사직원이 71퍼센트, 전체 사무직원이 50퍼센트, 생산직 근로자가 20퍼센트나 해당되었다. 이런 엄청난 구조조정으로 던랩은 일단은 경비를 줄일 수 있었다. 직원 해고 외에도 던랩은 일부 생산 및 서비스 아웃소싱을 통해 다른 부분에서도 경비를 삭감해버렸다. 그해 말까지 그는 세전금액으로 3억4,00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1994년, 그가 비전략적 자산으로 처분하고자 했던 S. D. 워렌이 한 국제투자 그룹에 16억 달러에 팔렸다. 그와 함께 다른 재산도 처분해서 스코트 제지는 20억 달러를 회수했다. 다른 한편, 던랩은 부채를 15억 달러나 낮추고 스코트 제지의 주식을 3억 달러 어치를 사들여 회사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시켰다. 이 같은 그의 구조조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2분기 들어 수익은 71퍼센트가 늘고, 3분기 매출도 73퍼센트나 늘었다. 이는 4년 만의 최고의 실적이었다. 이어 4분기에는 수익이 1993년 동기 대비 159퍼센트나 신장하고, 순익은 82퍼센트나 상승했다. 주가도 연일 뛰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효과가 숫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숫자의 이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시장점유율이 문제였다. 1995년 4월, 이 회사의 화장실용 화장지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1퍼센트에 멈추어 섰고, 키친타월의 경우에는 오히려 5.2퍼센트나 역신장 했다. 겉만 화려한 숫자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된 셈이다. 1995년 7월, 던랩은 그의 무자비한 구조조정과 숫자의 현란한 포장을 통해 스코트 제지의 인수자를 찾게 된다. 킴벌리 클라크가 이 회사를 73억 8천만 달러에 인수하자, 던랩은 구조조정의 대가로 막대한 현금을 싸서 짊어지고 유유히 회사를 빠져나갔다. 그에게는 또 다른 신화를 꿈꾸는 기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던랩이 죽어 가던 스코트 제지를 살려냈다는 신화는 믹서, 전기담요, 가스그릴 등 사업에서 지진부진하기만 한 선빔으로서는 군침이 넘어갈만한 일이었다. 던랩은 개선장군으로 선빔으로 향했다. 시장도 덩달아 요동 쳐 던랩이 선빔의 대표직을 수락하던 날, 선빔의 주식은 50퍼센트나 수직상승했고, 그 후에도 300퍼센트나 뛰었다. 이번에도 던랩이 할 수 있는 전략은 같았다. 선빔의 CEO가 되자마자 던랩은 1만 2,000명의 직원 중 절반을 해고하고,  생산시설도 반으로 줄였다. 선빔의 가구, 침대시트 등 아이템은 정리되었고, 차후 주력 사업으로 그릴, 가습기 등 주방가전제품에 집중했다. 1996년, 던랩은 3억3,800만 달러어치의 감가상각처리를 했는데 그 중 1억 달러가 재고였다.

1997년 들어 구조조정의 성과는 또 숫자의 마법에 빠져들었다. 판매가 22퍼센트나 상승하며 11억 6,800달러에 이르렀고, 1억9,600만 달러의 손실을 본 전년도 대비, 1977년에는 1억2,3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주주들은 주당 1.41 달러의 순익을 챙길 수 있었다. 선빔에 대한 던랩의 경영진단은 현실 인식에 기인한 바 있다. 예컨대, 공장과 배송센터의 불합리한 운영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선빔은 30여 개 공장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하나의 집합체였다. 경영진은 합병한 회사를 선빔으로 통합시켜 큰 회사로 만들기보다는 거래 자체에 홀려 있었기 때문에 공장마다 다른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선빔이 소비자 인지도가 높은 강력한 상표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을 잃어가고 있었다. 더욱 어안이 벙벙한 일은 미시시피주 해티즈버그에 1억 달러를 투자하여 제조, 보관 및 배송센터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해티즈버그는 고속도로와 항공 등 교통편이 부족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공장 가동율이 40퍼센트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가동률이 50퍼센트도 넘지 않았는데 대규모 생산설비 건설이 필요하다고 도대체 누가 생각해 냈단 말인가? 결국은 다른 곳의 설비를 해티즈버그 설비에 통합시켜 존속하기로 결정했다. 그곳은 선빔 구조조정의 초점이 되었다.”

선빔 공장을 구조조정한 결과 2억 2,500만 달러의 회사전체의 연간 비용을 절감했다. 공장은 전 세계적으로 26개에서 8개로 줄었다. 재고창고는 61개에서 18개로 줄었고, 전체 1만 2,000명에 달하던 인력도 절반으로 감축되었다. 감축한 인력의 절반은 영업조직 매각을 통해, 나머지는 해고를 통해 줄인 것이었다. 던랩은 상급자부터 해고해 나가기 시작해 본부 인력을 308명에서 123명으로 60퍼센트 잘라냈다. 기타 경영진이나 행정지원 인력은 1,529명에서 697명으로 줄였다. 첫 주에 회계감사 수수료를 50퍼센트나 삭감했으며, 보험 수수료는 80퍼센트를 줄였다.

대표직을 맡은 지 1년이 지난 1997년 10월, 던랩은 선빔이 완전히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공표한다. 1996년에 12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50달러로 치솟았다. 그러나 이런 주가 상승이 선빔의 발목을 잡으리라고는 그 당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선빔의 주가가 50달러가 되자 선빔의 시가총액은 46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는 선빔 매출의 4배나 되는 수준이었다. 애시당초 기업을 정상적으로 지속 경영하는데 관심이 없던 던랩은 회사를 매각 처리해 버림으로써 또 다시 신화를 쓰며 손을 떼고자 했다. 오래 유지하면 들통이 난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시가총액으로 인해 선빔을 인수하겠다는 회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단기 약발에 취한 주주들은 던랩이 계속 회사를 맡아주기를 원했다. 액싯 플랜(Exit Plan)이 차단된 것이다.

생각과 달리 일이 꼬이자, 던랩은 연일 회사 매각을 위한 파티를 열며, 한편으로 사업영역을 확대시켜 나가는 전략을 펼쳤다. 24억 달러를 들여 콜먼 컴퍼니(Coleman Company), 시그너처 브랜즈(Signature Brands), 미스터 커피(Mr. Coffee), 퍼스트 얼럿(First Alert)을 묶어서 인수한 것은 새로운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비쳐졌다. 인수 비용 중 일부는 7억5,000만 달러어치의 전환사채와 현금화할 수 있는 매출채권 6천만 달러어치로 충당했다. 이 무모한 인수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인수로 인한 문제는 선빔의 장부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실제 상황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선빔의 매출 및 순익 변화(1991~1997년)

(단위 : 백만달러)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매출

886

967

1,066

1,198

1,203

964

1,168

순익

47.4

65.6

88.8

107

50.5

-196

123



기업 연례 보고서에서 보듯, 선빔이 1997년에 1억2,300만 달러의 순익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서자 사람들은 이 놀라운 사기꾼을 희대의 경영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의 구조조정 사례는 IMF 직후 우리나라에도 풍적인 인기를 끌어 1999년 국내에서 출간된 던랩의 자서전『던랩의 기업수술』이란 책의 추천사를 당시 전경련 부회장이 쓸 정도였다. 그는 던랩의 구조조정 방식을 예로 들며 한국의 경영자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자신감을 갖으라고 소리쳤다. 

 
“던랩은 올바른 경영진 구성, 최저수준으로의 비용삭감, 비핵심사업부문 매각을 통한 대차대조표 개선, 가장 중요한 사항인 제대로 된 경영전략의 수립과 시행을 기업회생전략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네 가지 기본전략은 20여 년 동안 7개 기업을 회생시키는데 거의 예외 없이 적용된다. 누구나 기업을 분할하여 적정규모로 축소할 수 있다. 그러나 던랩은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여 기업을 회생시키고 이를 주주의 이익으로 연계시켜 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것도 예상기간보다 훨씬 빠르게 말이다. 특히, 그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자사의 주식 매입에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투자하고, 스톡옵션제를 철저히 활용하였다. 동참할 중역들에게도 자사주를 매입토록 해 성심껏 희생 프로그램에 동참하도록 유도하였고, 항상 주가상승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결국 주주들에게도 막대한 이익을 선사하였다. 그러면서도 정상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65퍼센트를 위해 35퍼센트를 버려야만 하는 현실 앞에서 노조와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협상을 통해 한 건의 마찰도 없이 일자리 수를 조절해 가는 탁월한 경영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무렵 대한민국 경영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던랩 특유의 경영관, 구조조정 성공사례, 저돌적 추진력, 뛰어난 통찰력과 실행력은 높이 평가되었고, 심지어는 ‘참된 경영자’로 평가되기조차 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수박 겉핥기식으로 서구의 구조조정 사례를 도입하던 때의 해프닝이었다.

던랩이 이룬 성과는 그러나 나중에 거짓임이 판명됐다. 던랩은 분식회계, 장부조작, 구조조정에 든 비용 미계산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치를 조작한 것이다. 1997년의 순익을 부각시키려고 그는 1996년의 손실을 부풀렸다. 자신이 1억9,600만 달러라는 최악의 손실을 본때에 CEO로 취임해 이룩해 낸 성과로 포장해 내고자 한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그 효과가 서서히 드러난다. 1998년 1분기 들어 선빔은 매출이 하락하고 손실이 기대치를 넘어섰다. 손실은 4천460만 달러에 달했다. 주가는 곤두박질쳐 50퍼센트 급락하해 25달러로 폭락했다. 그리고 2사분기에 가서는 4.62달러로 완전 추락하고 만다.

이에 대해 던랩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그와 그가 데려온 고위 중역들은 콜먼 컴퍼니 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축소해 나갔다. 다른 한편 마진이 적은 야외용 그릴 등에 집중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환상적인 행진은 종착점에 접어들고 있었다. 신마저도 그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출시한 신상품이 계속 리콜 되었고, 엘니뇨현상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며, 폭풍우가 몰아쳐 누구도 야외용 요리 기구를 사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위기를 만회하고자 인수한 기업들의 직원을 또 3분의 1이나 줄였다. 그러나 회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에는 선빔은 너무 멀리 가 있었다.

1998년 6월 15일 일요일에 급히 소집된 이사회는 던랩에게 해고통지를 했다. 해고된 사람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회사 측과 기어코 받겠다는 던랩 측의 추잡한 소송이 시작되었다. 그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반응들은 대체로 이랬다.

 
“드디어 그 인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한 그대로 되돌려 받았다.”
“이제야 그 회사가 제정신을 차린 것 같다.”


소송이 벌어지고, 서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자료들이 수집되었다. 던랩이 경영을 맡던 1997년과 1998년에 수익을 부풀리는 회계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2001년 5월,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증권법을 위반한 혐의로 던랩과 그 밑에서 일하던 몇 명의 중역들을 고소했다. 매출 과장 방법으로 1997년의 경우, 소매점들에게 다음 분기의 상품 판매분을 서둘러서 보고토록 함으로써 미래의 수익을 당겨서 계산하는 수법도 동원되었다. 실적에 쫓기는 경영자들이 범하기 쉬운 유혹을 그도 여김 없이 범했던 것이다. 그는 한번 거짓말을 통해 다음번 거짓말을 예약해 놓았다.

그는 이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그리고 수치를 “해석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 2001년 2월 선빔은 18개월간의 재무상황을 재조사한 바를 발표해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회사는 2월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02년 9월, 던랩은 증권거래위원회에 50만 달러의 벌금을 내고 다시는 어떤 상장기업의 경영자나 중역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 받았다. 한 달 후, 던랩은 주주들로부터 받은 고소를 해결하기 위해 1,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한편 증권거래위원회는 던랩이 스코트 제지를 경영했을 때도 틀림없이 같은 방법으로 장부조작을 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구체적인 조사에는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보다 몇 백배가 더 큰 엔론 사태가 터져 버렸던 것이다.



<던랩의 무리한 구조조정과 확장의 교훈>

-기업의 경영진은 재무제표상의 위험을 식별하고 지속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재무건전성을 획득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실행하게 되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파급 효과를 십분 고려해야 한다. 직원들의 사기 저하라든가, 구조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얻게 될 실질적인 이득이 뭔지를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기업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기업을 이끄는 힘의 원동력은 직원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던랩 신화의 좌초는 바로 무리한 사업구조조정, 직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면의 결여, 단기 목표 중심주의, 치고 빠지는 경영 스타일, 회계 부정과 매출 의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벌어진 현상이다. 게다가 유명무실한 경영진, 이사회와 감사기능의 부재는 던랩이 숫자를 감추기에 너무나 적절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던랩은 자신의 대부분 이력을 기업회생 전문가로써 쌓아 오면서 20여 년간 죽어가는 7개 기업을 회생시켰지만, 결국 경영이란 신화를 써나가는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기초를 튼튼히 하는 가운데 마련되는 것이라는 점을 실천하지 못했다. 던랩의 신화에 환상을 갖게 된 기업과 투자자들은 어떤 래드 플래그를 무시한 것일까?


  - 단순히 숫자에 현혹돼 주가를 끌어올리는데 급급한 회사의 내부사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반드시 뭔가 꺼림직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기업의 경쟁력, 내실이 전제되지 않는 경영상의 숫자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화려한 살적발표, 비전 설명회의 개최, 신사업의 진출 등 수사(修辭)에 급급한 회사들에게는 래드 플래그를 꽂고 보자.


  - 조직 내부에 무엇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를 알 수 있도록 강력한 점검과 제어 장치를 만들어라. 문제가 있다면 확대되어 통제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재빨리 문제점을 파악하고 조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과도한 레버리지, 자기 과신, 하석상대의 자금 조달  같은 것들은 충분한 래드 플래그가 되어 준다.


  - 던랩 식으로 밀어붙이는 방식과 속도감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뛰어난 위기관리능력 같지만, 이런 방식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치명적인 장애물이 된다. 해고되지 않고 살아남은 직원조차 사기가 떨어지고, 만회는 어려울 수 있다. 경영층이 빠른 결과를 바라는 조급증을 보일 때에는 그 같은 행동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던랩은 스코트 제지 때처럼 선빔의 경우 치고 빠지는 작전을 구사하려 했지만,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 그것이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다. 너무 띄워 놓은 기업가치 때문에 인수자를 찾을 수 없었다. 선빔을 팔 수 없게 되자 투자가들은 던랩을 잡고 늘어졌다. 이는 그 자신 ‘치고 빠지는 상황’을 맹신한 결과이다. 럭비공처럼 목표에는 이르렀으나, 목적에는 이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였다. 경영이란 이처럼 불확실성과의 대면이다. 가장 긍정적 요소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던랩으로서는 래드 플래그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너무 무리한 구조조정을 한 결과, 기업의 미래를 위해 붙잡아 두어야 할 꼭 필요한 인재들과 사업부서가 잘려나갔다. 이 같은 현상은 IMF 시기 한국 기업들의 구조조정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한국 경제는 그 후 경기 상승기에 인재와 시설 부족으로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식이 아니었던 셈이다.


  - 던랩 스코트 제지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넘쳐 있던 탓에 선빔의 경우에도 같은 방식이 먹힐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스코트 제지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그대로 선빔에 적용한 끝에 실패했다. 융통성이나 상황에 대한 조사 없이 자신이 외우고 있는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 셈이다.


  - 던랩은 선빔에서 납득되지 않는 기업 인수를 세 차례 결정했고, 그 때문에 회사는 수십억 달러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돈을 계속 잃고 있는 콜먼을 22억 달러에 인수한 것은 회생 가능성이 있는 선빔을 완전 좌초시켜 버린 결정적인 실수였다. 이 같은 결정은 상세한 조사 없이 개인적 충동에 의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영자가 어느 시기 일정한 면에서 숫자상 좋은 지표를 보일 때 열광하는 투자자들의 행동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 던랩은 기업을 포장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 갑작스런 실적 상승 등 의심받을 일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는 결국 선빔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경영층의 도덕성 부재는 투명기업을 강조하는 오늘날 경영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요는 충분한 내부 제어장치이다.




래드 플래그 제9법칙: 문제 외연화의 법칙

-자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세상 모두를 다, 계속해서 다 속일 수는 없다. 한 가지 성공의 방식이 모든 면에서 지속적으로 맞는다면 경영환경은 고정되어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현실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현실을 대하는 자신이 문제인 경우도 허다하다. 스스로 지닌 문제가 어느 상황에서는 표출되지 않다가, 다른 상황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내내된 문제가 마침내 외연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경영자, 관리자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본질적 문제를 철저히 규명해 나가야 한다. 이 점을 모른다면 끝내 래드 플래그는 악몽이 되고 말 것이다.


<징후 예측과 위험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들 >

-오늘날 기업은 윤리의식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협의의 윤리는 부정행위를 금지하는 것이지만, 보다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사업의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견인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위기는 어느 한 측면으로 편향되는데서 나타난다. 위기의 본질을 알고, 이에 대처하는 감식안을 키우자.


   -도덕적 해이 또는 불감증은 기업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특히나 영향력이 큰 상층부의 도덕성 부재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오늘날 한국기업의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소유주, 경영층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을 살리는 도덕적으로 무장된 투명한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과거의 성공사례에 집중하다보면 착시현상에 빠지게 된다. 다른 환경에서도 관성의 법칙처럼 예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조직의 위기는 부적응이나, 일탈로 나타나기도 한다. 성공습관은 간직하되, 그 방식은 달리하자. 그것이 개인적으로도 지속적으로 자기의 성공을 관리해 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참고자료>

로버트 F. 하틀리, 『피말리는 마케팅 전쟁 이야기(Marketing is...War)』, 아이엔컴퍼니,

 2004.

『The New Scott 1994 Annual Report』, 5쪽.

 Joseph Weber and Paula Dwyer, 「Scot rolls Out a Risky Strategy」, 『Business Week』, 22 May

  1995. 

 Martha Brannigan,「Sunbeam Audit to Repudiate '97 Turnaround」, 『Wall Street Journal』, 20        October 1998.

 「Audit Shows Sunbeam's Turnaround Really a Bust」, 『Cleveland Plain Dealer』, 21 October 1998.

 Martha Brannigan, 「Sunbeam's Slashes Its 1997 Earnings in Restatement」, 『Wall Street

   Journal』, 21 October 1998.

 Jill Barton, 「Sunbeam's 'Chain Saw Al', to Pay $500,000 Judgment」, 『Associated Press as

   reported in Cleveland Plain Dealer』,  5 September 2002.

 앨버트 던랩, 밥 안델만, 『던랩의 기업수술』, 1999. FKI미디어.


ⓒ전경일, <레드 플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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