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법칙: 금단(禁斷) 무시의 법칙

  
-일어날 사고는 반드시 일어 나겠끔 되어 있다. 사고의 속성은 다름 아닌,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금단(禁斷)의 원칙이 무참히 깨져 버리는 순간 발생한다.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 올림픽 출전권을 다투는 한국과 이란 축구대표팀간의 경기를 보고 있던 대다수 국민들은 TV 화면을 흘러가는 자막에 순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시간, 1970년대를 풍미한 22살의 인기절정 가수 하춘하 씨는 이주일 씨와 함께 공연 중이던 무너진 이리역 부근 삼남극장의 담벽을 타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순간, 전쟁이 난 줄 알았다. 폭발음 이후, 이리역 근방에는 피투성이의 환자들이 즐비했고, 거리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불과 몇 분 전만 하더라도 500여명의 관객 앞에서 오프닝으로 히트곡을 10여분 부르고 다음 공연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 분장실로 들어간 하씨였다. 11월의 쌀쌀한 날씨에 하씨는 난로를 쬐고 있었고, 전속 사회자였던 이주일씨는 무대에 나가기 위해 거울을 보며 나비넥타이를 만지고 있었다. 그는 “뭔가 보여주겠습니다!”라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그려보였다. 그 순간,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극장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초대형 폭발음은 15초 간격으로 세 번이나 이어졌고, 현장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폭발음이 들리더니 순간적으로 전기가 나가고, 벽이 무너지고 유리파편이 튀는 등 역 주변의 집은 완파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세워 놓은 차들도 뭉그려지긴 마찬가지였다. 집이 무너진 사람들은 흙더미속에 갇혀 구조대원들의 도움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리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이내의 가옥 등 건물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반경 1킬로미터 내의 가옥은 반파, 반경 4킬로미터 이내의 가옥은 창문이 떨어져 나가나갔다. 반경 8 킬로미터 이내에는 유리창까지 파손되었다. 판자집이 밀집해 있던 모현동의 경우에는 60가구의 부락 하나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화약열차가 서 있던 4번선 일대는 지름 30여 미터에 5층 건물 높이로 패어 흡사 분화구인양 사고발생 12시간이 지난 후에도 열기와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열차와 휘어진 철로가 무참하게 나뒹굴었다. 이리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이내의 가옥 등 건물은 완파되었고, 반경 1킬로미터 이내의 가옥은 반파, 반경 4킬로미터 이내의 가옥은 창문이 떨어져 나갔으며 반경 8킬로미터 이내의 유리창까지 파손됐다. 특히, 서민 주거 밀집지역인 창인동의 경우 거의 쑥대밭이 되었다. 판자집이 밀집해 있던 모현동의 경우도 60가구의 부락 하나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모든 피해는 당시 폭발 위력과 후폭풍에 의한 것이었다.) (참고: 『위험관리 100호 특집 大韓民國災難47年』)


















그 당시 이리역 주변의 모현동은 마살매 부락이라고 불렸는데, 모현동과 창인동 지역에는 소매치기도 많았고, 노동자와 영세민이 많이 사는 동네였으며 윤락가도 있었다. 전부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리역 건물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천정과 벽이 무너져 내렸으며 객화차 사무소와 보선사무소는 기둥과 뼈대만 남고, 역사 구내에 있던 객화차차량 117량이 파괴되거나 탈선해 넘어졌고, 선로는 휘어지고 모두 1천6백50미터가 파손됐다. 모든 피해는 당시 폭발 위력과 후폭풍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폭발력이 얼마나 셌던지 현장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까지 화차 상판이 날아올 정도였다.

사고 후 최종 집계된 자료를 살펴보면, 사망이 59명, 사상자가 1,400명, 재산피해액이 61억원, 이재민이 7,500여명, 건물피해가 9,539동에서 발생했다. 이재민 수는 1천6백74세대 7천8백73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에는 주민들 외에도 근무 중이던 철도 공무원들이 16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피해규모는 우리나라 폭발사고 중 가장 큰 규모였다. 한국전쟁 말고 폭발사고로는 당시까지 10명이상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망자만 59명이었으니 엄청난 사고였음에 틀림없다. 이후로는 각종 폭발이나 화재, 붕괴 등 각종 안전사고로 수십 명에서 100명 이상에까지 이르는 사망자를 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사상 최대의 참사였다.

당시 이리시는 인구 13만의 조용한 도시였다. 이 소도시는 폭발음과 함께 한순간 암흑과 공포,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폭발의 진원지는 인천에 있던 한국화약에서 민수용 화약 24.810톤을 싣고 광주로 가기 위해 하행선에 대기 중이던 대전기관차사무소 소속 제1052 화물 열차가 이리역 구내 입환(入換) 4번선 철로에서 폭발하면서 벌어진 것이었다. 이 열차는 영등포역에서 하룻밤을 대기한 뒤 10일 아침 9시 26분 다시 영등포를 출발, 이리역에 도착했다. 이리역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 31분이었으며, 목적지인 광주로 출발할 예정으로 사고 지점인 4번 입환 대기선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열차에는 다이너마이트 1천139상자, 초산 암모니아 200개, 초육폭약 100상자(2톤), 도화선 50개(1톤) 등 도합 30.28톤이 적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초대형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역구내에 정차 중이던 화약열차가 호송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었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날 이리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당시 수사를 맡았던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화약공업주식회사(현재의 한화)의 호송원 신무일(당시 36)씨가 술을 마시고 화차 속에서 양초에 불을 붙이고 잠든 사이 불이 마분지를 타고 화약상자에 옮겨 붙으면서 대폭발로 이어졌다고 한다. 호송원 신무일씨는 수사과정에서 “인천을 출발해 이리까지 오는데도 무려 36시간이나 걸렸고, 이리역에 도착해서도 화차배정을 받지 못해 하루 동안 역구내에 대기하고 있어 화가 나서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호송원 신무일 씨는 화약류의 직송원칙을 무시한 채 수송을 지연시키고 있는 이리역 측에 항의를 했으나 묵살되고 말았다고 진술했다. 화차 배정을 받지 못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고, 화가 나 술을 마신 채 촛불을 켜고 잠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속내를 헤아리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사고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들이 서서히 형성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신씨가 잠든 사이 양초로 인해 불이 붙은 침낭과 화약상자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15초 간격으로 세 차례의 굉음과 함께 천지를 진동시켰다. 술을 마신 신씨는 화재가 나자 진화에 실패하고 도주했다가 붙잡혔다. 그는 당시 검은색 점퍼 차림이었다. 사고 직후 기자와의 대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기자: 당신 혼자 화약 호송을 맡았나요?

신씨: 그렇소. 나는 이제까지 7년간 혼자서 화약 호송을 했지만 별다른 사고가 없었어요.

기자: 이 사실을 회사 측과 가족에게 알렸나요?

신씨: 알리지 못했죠. 지금쯤 내가 죽은 줄 알겁니다. 가족들이 보고 싶군요.


사고 후 신씨는 너무나 태연한 표정이었다.
당시 사고의 책임을 물어 한국화약(주) 신현기 사장을 비롯해 화약회사, 철도청, 대한통운 관계자 등 7명이 무더기로 사법처리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재판과정에서 대부분 형이 감량돼 중형을 선고받은 이는 없었다. 폭발사고의 주범인 신무일씨는 1978년 2월 10일 방화 및 폭발물 파열 치사상죄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리역 폭발사고는 어떤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을까? 모든 징후가 종합적으로 드러난 것은  호송원 신무일 씨가 화차 내부에 촛불을 켜놓은 순간, 이미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더구나 화차 내부에 초기에 번진 불을 끌만한 진화장구가 없었다는 것은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을 막을 수 없는 극한의 상태에로까지 끌어 올려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고가 일어나기 전, 제 조건들은 하나같이 어떤 하나의 원인이 다른 잠재원인들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도록 작용하고 있다. 즉, 제 여건 간의 ‘앤드(and)조건’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점에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 우선, 한국화약(주)과 철도청의 허술한 수송과정과 호송 방법을 들 수 있다. 즉, 한국화약(주)측은 총포화약류단속법과 이에 따른 시행령 등의 규정을 무시한 채 다이너마이트 등 폭약과 뇌관 36상자를 실었으며, 또한 위험물 취급 무자격자를 열차에 동승하게 하는 과오를 범했다. 위험물질을 운반하면서도 호송원 1명이 책임졌다. 역 당국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목적지 직송원칙'을 어기고 구내에 장시간 대기시킨 것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철도청은 철도운송규정 제46조 2항에 의거, "화약류는 되도록 도착정거장까지 직통하는 열차에 의하여 운송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한 채 화약열차를 역 구내에 22시간 이상이나 방치시켰으며, 또한 위험표지판의 부착이나 비상소화전 등의 방화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위험물을 적재한 열차는 정해진 시간에 주기해야하는데 열차 통과가 선로 배정 이상으로 자꾸만 미뤄졌다. 규정이 무시되면서, 호송원 신씨는 짜증이 났고, 홧김에 술을 마시고 와서 촛불을 껴놓은 채 잠이 들었다가 폭발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화약회사 호송원의 허술한 안전의식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화약류 등 위험물은 역 구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곧바로 목적지로 통과시켜야 하는 직송원칙을 준수했더라면 이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인 관리지침만 지켰어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고가 원칙 무시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이리역 폭발 이전에도 이 같은 원칙 무시, 시스템 작동상의 문제는 계속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리역 폭발을 계기로 표면에 드러났을 뿐이다.

이 사건 이후 결과적으로 철도운송과 화약류 등 위험물은 운송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철도 위험물 수송원칙을 새로 보완하거나 점검하게 되었으며, 화약류 운반 열차가 역내에 진입하면 우선적으로 경찰에 신고하는 등 행동요령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후 이 시스템이 완전하게 정착된 것인지,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등은 드러난 바 없다. 문제 자체가 문제를 먹어 버린 것인지, 여전히 불발인 채 남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시스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리역 폭발 사고뿐만 아니라, 내부 시스템의 불작동으로 벌어진 사태는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원인을 내재한 사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회 전반에 작동되어야 할 시스템이 작용되지 않은 결과였다. 이 사건에 대해 여느 사건과 동일하게 수사당국이나 언론은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고 규정하곤 하지만, 실은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바로 시스템이 부재가 원인인 것이다. 

이리역 폭발 사건이 터지자 한국화약은 두 번에 걸쳐 사과문을 신문에 게재했다. 한번은 회사 이름으로, 다른 한번은 앞의 사과가 여론에 우호적으로 작용되지 않자 회장의 이름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2차 사과문은 사고발생 80시간이 지나서야 발표된 것이었다. 1차와 2차의 사과문의 내용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1차 때에는 “깊은 사과”를 했던 것을 2차 때에는 “거듭 사죄”로 바뀌었다 그 외 1차 때에는 없던 ‘법적, 도의적 책임’, ‘피해 복구에 전력’ 등의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 내용을 보기만 해도 두 번 다 경황 중에 작성된 사과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45년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敵産)을 정경유착에 의해 정부로부터 헐값에 인수받아 성장해 온 이 회사는 전후복구로 사세를 키워 가다가 1959년 들어서서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게 된다. 이 다이너마이트가 이 회사 성장의 배경이 되지만, 다른 한편 안전 불감의 이리역 폭발사건을 초래케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리역 폭발사고의 교훈>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의 기업들은 ‘속도와 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로 모든 게 짜여 있어서 앞으로만 질주하다보니 미처 못본 곳을 돌아 볼 기회조차 놓치곤 한다. 조직 내 안전망의 부재는 비정상적인 사고가 빈발하겠금 유도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일상적 위기 하에 놓여 있다. 어느 기업과 사회 내부의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두 면은 일반성의 양상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상시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잠재적으로는 더 큰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위기관리(crisis 미터anage미터ent)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한다. 사전대비, 사전대응의 발상전환을 통해 위험관리체계를 마련하고, 현장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보다는 미약한 초기 징후를 찾아내, 원천적으로 위험의 진앙지를 제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위기유형 및 빈도를 측정해 미래의 위기요소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기업들이 취하는 효율적인 위기관리 프로그램은 상시 실행단계에 있어야 한다.  “Naver say naver”의 자세로 임할 때, 기업은 지속가능경영을 꾀할 수 있다.


  이는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개인에게 닥치는 위기도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위험 자체를 순간순간 점검하는 상시적 점검 체계는 무엇보다 긴요하다. 특정 위험을 바라보는 관심을 높이고(리스크 인식risk perception), 위험의 근원을 찾고 열거하고 특성화 하는 과정(근원 구명source  identification)에 강도 높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 어디서든 갑자기 날아오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어느 기업이든 기업 활동에는 숙명적인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모든 상황이 통제 가능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안전 전략, 즉 조기경보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시스템을 통해 선행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이너마이트는 불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다름 아닌, 터질 것은 언제고 터진다는 것이다.


  이리역 폭발 사고는 시스템 결함과 사소한 부주의가 마이너스 상승작용을 일으킨 예의 하나에 해당된다. 조직 내 어디에 폭발 잠재성이 있는 위험요소가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위기관리를 통한 생존 모색이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업 내부에는 어떤 다이너마이트가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 보자.



래드 플래그 제6법칙: 위험 표면화의 법칙

- 어떤 사고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않고는 사고는 언제고, 반드시 일어나게끔 되어 있다. 위험의 표면화 법칙은 위험 아래 감추어진 위험의 진앙지를 찾아내 미리 불을 꺼버리는 것이다.


<징후 예측과 위험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들 >

-위험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위험 요인이 전혀 없는 것인가? 현상적으로는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한 수심이 언제나 깊고, 그 속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조직의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을 배가하자. 만일, 겉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본질로 오인된다면 그 기업은 문제가 표출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이 내면으론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다.  


   -대형사고의 경우에는 피해규모가 엄청나고, 파급효과가 즉시 나타난다. 이런 위기를 폭발적 위기(exploding crisis)라 한다. 이런 폭발적 위기시에는 위기 자체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할 수 없다. 이때 조직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피해의 확산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조직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조직 내부의 만성적인 관례, 습관적으로 반복해 온 관성적인 업무,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무책임 주의, 직원 교육의 부재가 이리역 폭발사건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다. 우리가 늘상 하는 일이 조직의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자. 


  -잠재된 위험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 사소해 보이는 일 속에도 얼마든지 래드 플래그가 잠재되어 있다. 직원의 불만을 야기하는 업무 절차도 문제지만, 그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한국화약 호송원처럼 술 마시고 촛불을 켜놓고 잠잘 수 없는 곳에서 그 같은 규정 위반을 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요는 작은데에서 부터의 원칙 준수이다.  


  -위험이 몰고 오는 결과는 무엇인가? 한국사회 특유의 적당주의, 망각주의가 위험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위험을 대하는 태도도 결코 온정주의로는 대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 이런 적당주의가 판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토론해 보자.


  -위험은 왜 간과되는가? 위험이 무시되거나 위험을 키우는 태도들은 무엇인가? 위험이 표면화되는 것은 단독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원인은 연쇄적 원인과의 작용결과이며, 그것이 다음의 원인이 되어 재해를 일으키거나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원인과 결과는 복잡계처럼 서로 얽히고 섥혀 원인도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초기에는 매우 작은 원인이 매개가 되어 대재앙으로 발전한다. 작은 원인을 제거할 때 기업은 궁극적으로 괴멸적 타격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조직내 위험이 간과되는 이유들을 파악해 보자.


  -우리 회사는 숨은 위험요인을 찾아낼 역량이 있는가? 위험을 방지하는 조직 내부의 인적 자원에 대해 토의해 보자. 위기관리 의식에 대해서는 특정 조직, 부서만의 책임이 아닌, 누구나가 안전관리 책임자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들이 위험에 대해 간과하는 조직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기업을 쇠락으로 이끌 것이다. 내부의 조직화된 위험관리 능력을 점검해 보자.



<참고자료>

『광주일보』, 2004. 5.12, 5.19. 6.2.
안재기,『BC 뉴스』, 2007.4.12. 14:15
이승준,『전북도민일보』, 2006.11.12.
『Oh my news』, 2004.4.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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