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와 원소의 커뮤니케이션 차이

 

조조와 원소군이 벌인 한판 승부인 관도(官渡)대전. 이 대전은 이후 창정(倉亭)전투, 유성(柳城)전투로 이어지며 조조가 원소군을 연이어 격퇴하는 전기가 된다. 이 전투의 승리 요인은 무엇일까? 쌍방 각 진영 내 커뮤니케이션이 큰 몫을 차지했다. 양 진영의 승패를 가른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살펴보도록 하자.

 

군사를 일으킨 원소가 관도를 향해 나가자, 하후돈은 서신을 띄워 급히 허창에 알리고, 조조는 순욱에게 허창을 지키라고 명하고는 친히 7만 군사를 거느리고 원소와 맞선다. 원소가 군사를 이끌고 나갈 무렵, 옥에 갇힌 전풍이 원소에게 글월을 올렸다. 이때 전풍은 일전에, 원소의 출전을 거듭 반대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유비의 만류로 옥에 갇힌바 있다. 그가 올린 글월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은 하늘의 운수를 기다려 조용히 지키고 있을 때이므로 함부로 대군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합니다. 싸움에 이기지 못할까 심히 걱정입니다.”

 

이 글을 알게 된 봉기가 원소 앞에서 전풍을 헐뜯자, 원소는 울화가 치밀어 전풍을 참형에 처하려 했다. 그때 여러 관리들이 만류해 전풍은 간신히 목숨만은 구한다. 구했다기보다는 전투 후에 돌아와 죄상을 묻겠다고 했으니 처벌 유예된 셈이다. 그리하여 원소는 군사를 독촉하여 출전했다. 원소가 양무까지 진격하여 진영을 세울 때 저수가 조조군의 군량이 모자람을 근거로 지구전을 행할 것을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원소는 노하여 전풍과 마찬가지로 저수를 조조를 격파한 후에 죄를 다스리겠다고 꾸짖고는 곧 70만 대군을 거느리고 나가서 90리에 뻗치는 대진영을 벌여 세웠다. 이 사실이 관도에 전해지자 조조군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조조가 여러 모사들을 불러 대책을 물으니 순유가 적의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군사의 질에서 상대가 되지 않으므로 속전속결을 벌일 것을 아뢴다. 이 말에 조조는 곧 북을 울려 군사를 거느리고 진격했다.

 

그러자 원소의 군사들이 몰려나와 양쪽에 진을 치고 맞섰다. 원소의 군사가 쌓아올린 토성이 50여 개에 달했는데, 토산에 사닥다리를 높이 세워 궁노수들이 위에 올라가 활을 쏘는 탓에 조조군은 접근조차 하기 두려워했다. 이에 조조는 유엽의 의견을 좆아 밤을 새워 서둘러 수백 대의 발석거를 만들어 토산의 사닥다리에 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군은 군량미의 보급도 어려워져 관도를 버리고 허창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 조조는 허창으로 편지를 보내 순욱에게 다시 의견을 물었다. 순욱은 아래와 같은 답서를 보내왔다.

 

승상께서 군사의 진퇴 문제를 물으셨기에 명을 받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원소가 모든 군사를 총동원해서 관도를 취하여 명공과 승부를 겨루려는 것 같습니다. 공께서는 약한 군사로 강한 군사와 맞서게 되셨으니, 저들을 제어하지 못하면 도리어 제어를 당하게 되는 것이 천하의 대기입니다. 그런데 원소는 군사가 많아도 이를 부릴 줄 모르니 어찌 제어치 못하겠습니까? 지금 비록 군사가 적다고는 하지만 초나라와 한나라가 형양과 성고에서 싸우던 때보다는 낫습니다. 승상께서 경계를 철저히 하시어 적의 목을 누른다면 진격해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두고 보면 반드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때 적절히 대응하시어 때를 잃지 마십시오.”

 

순욱의 전략에 따라 조조는 관도를 사수했다. 그 결과 끝내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조조와 원소간의 승패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략적 의사결정을 가져오는 밀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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